(원작리뷰)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025)

2019. 7. 1. 05:21개꿀리뷰

 

그리스로마신화 마이더스왕의 귀는 당나귀 귀 원작이 헬라시대의 알렉산더왕의 귀는 당나귀 귀를 거쳐 신라시대 경문왕의 귀는 당나귀 귀가 된 동화리뷰. #개꿀리뷰#동화리뷰#동화분석 https://youtu.be/WhsMSh5qiIQ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동화원작읽기)

 

너무나도 유명해서 모르는 사람은 간첩일 정도인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그런데 그 이야기는 그리스 신화의 내용 중 하나랍니다.

그리고 그 이야기는 알렉산더 대제로 유명한

그리스의 마케도니아 왕국 때부터 전해져 온 이야기입니다.

따라서 유럽과 근동 중동에도 널리 알려진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극동에서는 우리나라에만 전해진 이야기라는 사실은

저도 자료를 준비하면서 알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근동 중동 극동 이게 무슨 말일까요?

 

다분히 서구 열강 중심의 구분법이지만

현재 보편화 세계화되어 있기 때문에 하는 수 없이 따라 쓰고는 있지만

근동은 가까운 동쪽, 즉 터키, 이스라엘 등 유럽 중심 기준입니다.

그러니까 중동은 중간 거리인 오늘날 아랍권인 이라크 이란 등이 되겠지요.

이라크가 고대에 그 유명한 바빌론, 이란이 페르시아라는 사실은 알고 계시죠?

그리고 극동이 바로 중국, 일본, 우리나라가 되겠습니다.

 

뭐 이런 기준법은 유럽내에서도 마찬가지이죠.

로마시대까지만해도 게르만인은 야만인으로 분류되었습니다.

중국에서 말갈족, 여진족, 선비족 등등 동쪽 외부인을

동쪽 오랑캐라는 뜻으로 동이족이라고 한것처럼

로마는 갈리아, 골족, 겔트, 게르만, 바이킹 등 싸잡아 야만인, 오랑캐라고 불렀습니다.

그보다 더 먼 오랑캐, 즉 가까운 야만족을 게르만이라 했다면

더 멀리 깊은 숲속에 사는 야만인을 슬라브라고 했습니다.

 

아무튼 몽고의 칭키스칸이 말타고 서진하면서 훈족이 서쪽으로 도망가고

훈족의 이동은 당연히 슬라브인, 게르만인의 이동을 불러올 수밖에 없으니

로마 입장에서는 그 유명한 게르만 민족의 대이동을 겪을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이야기로 돌아가서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그 주인공은

손이 닿기만 하면 모든 것을 금으로 만들어 버린다는 그리스 로마 신화에 등장하는 왕

마이다스 즉 미다스의 설화가 가장 오래된 이야기로 사료됩니다.

기원전 8세기 경의 프리기아의 왕 미다스의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는 이야기는

기원전 4세기의 헬레니즘의 창시자이자

마케도니아 왕국의 전제군주인 알렉산더 대제의 이야기로 재등장합니다.

페르시아의 책인 이스칸다르나메 즉 알렉산드로스의 책에서

귀가 긴 이스칸다르 이야기로 수록되어 있는데요

이스칸다르는 알렉산더를 페르시아어로 음역한 것입니다.

그리고 이 이야기는 한국 버전으로 861년부터 875년까지 재위했던

신라의 48대 왕인 경문왕이 그 주인공으로 그 이야기는

1281년에서 83년 무렵에 저술된 삼국유사에 실려있습니다.

재미난 사실은 이 이야기가 중국이나 일본에는 없다는 거죠.

즉 이 이야기가 우리나라로 전래해 온 경로가 실크로드나 중국을 통해서도 아니고

일본에 의한 것도 아닌 해상무역을 통한 인도와 같은 다른 경로를 통해서

이 이야기가 전해졌다고 생각됩니다.

중요한 것은 이 이야기가 유럽이나 중동에서 꽤나 잘 알려진 이야기라는 것이고요.

다양하게 이야기가 변형되어 존재하지만 여기서는 원작에 충실한 다시보기를 시도하겠습니다.

 

술과 황홀경의 신으로 알려진 디오니소스를 섬기던 왕,

그리고 그 신을 잘 섬겨서 황금손을 얻기도 했던 그 왕이자

고르디우스의 매듭으로 유명한 그 고르디우스의 아들,

마이다스로 더 잘 알려진 미다스 왕의 귀 빠진 날 이야기가 아닌

귀 커진 이야기를 들려드리겠습니다.

 

무엇이든 만지면 금이 된다는 그 황금손 사건으로 화려한 것이라면 학을 뗀 미다스 왕은

어느날 음악의 신 아폴론이 숲의 신 판과 악기 연주를 겨루게 되자

심판진으로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이름에서 알 수 있는 바 아폴론은 찬란한 태양빛의 신이자 음악의 신이요

시와 의술과 궁술과 예언의 신입니다.

판이라는 신은 자연의 신이자 숲의 신이자 목축의 신입니다.

당연히 아폴론의 리라연주는 찬란하고 눈부셨고 화려했을 것입니다.

판의 피리연주는 소박하고 그윽하고 담백하였을 것입니다.

따라서 모두들 판의 피리연주보다 아폴론의 리라연주에 열광했습니다.

그런데 미다스는 화려한 리라연주보다 소박한 갈대 피리 연주가 더 낫다며

판의 손을 들어주었고 그 일로 아폴론은 미다스에게

그것도 귀라고 달고 다니냐며 귀를 잡아당겼고

그래서 미다스의 귀는 당나귀 귀가 되었다고 합니다.

아니 리라 연주보다 피리 연주가 더 좋을 수도 있지 라고 생각하시겠지만

리라는 다시 말해서 하프고 피리는 풀피리로 생각하시면 됩니다.

또한 판과 미다스는 신과 인간의 관계이자 절친사이이기도 하고요.

그리고 이름에서 그 의미나 의도가 드러나듯 미다스 왕의 이름은 탐욕, 과욕이라는 뜻입니다.

 

, 이 이야기를 재해석해볼까요?

우리는 끊임없이 생각하는 존재로 사고하고 비교하고 판단합니다.

미다스의 이야기처럼 마치 아폴론 신하고 판 신이 연주를 겨룰 때 심판하는 듯

우리는 그런 상황에 종종 놓이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는 미다스가 황금손 경험을 통해 트라우마가 있듯이

우리들 역시 우리들의 경험을 토대로 미다스와 같은 편파판정을 할 수 가 있습니다.

우리들에게 주어진 삶 속의 선택의 기로에서 우리는 미다스처럼

과거의 경험이나 자신의 지식이나 신념에 얽매여 잘 못된 결정을 하고 있지는 않나요?

그 결과 미다스는 아폴론 신에게 그것도 귀라고 달고 다니냐며

귀가 커져버리는 사건이 발생합니다.

즉 우리는 우리의 과거나 경험이나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것에

안주하거나 집착해서는 안됩니다.

세상은 끊임없이 변하고 생명은 역동적입니다.

우리의 귀를 크게 열어서 끊임없이 열린 자세로

변화하는 세상과 사회와 관계에 능동적으로 마주해야 할 것입니다.

때로는 우리도 아폴론의 연주가 더 아름답고 좋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때로는 판의 풀피리 소리같은 조용하고 잔잔하고 담백한 것,

좀 지나치게 말해서 우울한 음악을 심심한 소리를 듣고 싶을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상황과 정감에 사로잡혀 거기서 헤어나오지 못한다면

우리는 관계를 맺는 큰 능력, 즉 공감의 능력을 그만 잃고 말것입니다.

그런 사람을 극단적으로 뭐라고 하죠? 사이코패스.

또한 미다스와 판의 관계가 절친관계인것처럼 우리는 가재는 게 편이라고 치우치기 쉽습니다.

그게 인간입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 사실을 알고 있느냐와 모르고 있느냐라는 것이죠.

알면 똑같은 실수를 최소화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모르면 알 때까지 모른다고 그 실수가 무엇이 잘못인지도 모르면서

그것을 계속 반복합니다. 그것이 저주의 챗바퀴는 아닐까요?

저는 제가 배운 심리학적 인문학적 지식으로 이렇게 생각하는데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제가 갖는 관심은 뭐가 최고다 뭐가 우선이다 뭐가 전부다가 아니라

그렇다면 나는 어떻게 해석하는가, 나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렇다면 나는 왜 그렇게 생각하는가 즉 자발적이고 능동적인 삶의 참여와

관계의 해석에 관심이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저의 이러한 이야기가 여러분의 이야기를 스스로 해석하고

스스로 만들어가는 마중물,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그리고 바로 이러한 이야기가 헬라시대에 이르러 알렉산더 대제의 이야기가 됩니다.

여기서는 알렉산더 이발사가 우물에다 왕귀는 진짜 킹 왕 짱 큰 귀라고 소릴질렀고

그래서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고 소문이 나는데

알렉산더는 소문은 역시 어쩔 수 없구만 하고 그 이발사를 그냥 살려줬다고 합니다.

 

우리는 남다르고 특별하고 싶지만 그와 함께 남다르고 특별한 것은

창피해하고 부끄러워하고 숨기고 싶어합니다.

알렉산더의 큰 귀는 기형적이고 우스꽝스럽게 보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나 자신은 그렇게 생각하면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큰 귀가 뭐 어쨌다고. 나의 있는 모습 그대로를 내가 인정하지 않는다면

누가 나를 인정하겠습니까.

그리고 그러한 콤플렉스에 사로잡힐 때 그것이 바로 핸디캡이 되어

나의 발목을 잡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으로부터 자유로울 때,

그것은 더 이상 숨기고 가리고 부정하고 싶은 나가 아니라

자랑스럽고 특별하고 나를 상징하게 하는 귀한 귀가 될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지금 무엇을 도대체 부끄러워하고 창피하다고 생각해서

그렇게 숨기고 가리고 자기만의 비밀로 간직하고 있나요?

그것이 결국 당신을 병들게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감추고 숨긴 그 부분도 바로 나 자신이기 때문입니다.

이야기는 생명과 자유를 전달할 때 살아남듯이

우리역시 우리의 선택과 결정이 과연 나 자신을 살리고자 하는 것인지

자유롭게 하는 것인지 스스로 생각해 봐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 이야기는 배 타고 건너 한반도에 다다라서 경문왕의 이야기가 됩니다.

왕위에 오르자 왕의 귀는 갑자기 커져버립니다.

그러나 왕의 여자도 왕궁의 사람들도 그 누구도 이 사실을 모르지만

오직 두건을 만드는 장인만이 그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는 이 비밀을 평생 지키다가 죽기전에

서울 입구 근처에 있는 도림사라는 절의 대나무 숲 속에서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고 소리를 쳤습니다.

 

乃登位 王耳忽長如驢耳 王后及宮人皆未知 唯幞頭匠一人知之 然生平不向人說 其人將死 入道林寺竹林中無人處 向竹唱云, 吾君耳如驢耳

 

그 이후로 바람이 불 때마다 대나무 숲에서는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는 소리가 났습니다.

 

其後風吹 則竹聲云, 吾君耳如驢耳

 

그래서 왕은 그 소리가 듣기 싫어 대나무를 베어버리고 산수유를 심었는데

그 이후로 이런 소리가 난다고 합니다. 임금님 귀는 길다.

 

王惡之 乃伐竹而植山茱萸 風吹則但聲云, 吾君耳長道林寺 舊在入都林邊。】

 

뭐 어떻게 자기 여자들한테까지 그 비밀을 숨겼는지 저는 잘 모르겠지만

결국 잘 때도 모자나 왕관을 쓰고 잤는지 암튼 그게 중요한 건 아니고

알렉산더에서 경문왕으로만 바뀌었을 따름이지 사실 별반 다를바가 없는 이야기입니다.

자료에 의하면 일연 스님이 경문왕이 화랑으로써는 좋은 사람이나

왕으로써는 성격이 우유부단하여 팔랑귀라 당나귀 이야기를 가져다 사용했다고

보는 견해도 있지만 그 이야기를 남의 이야기를 들을 때

그 이야기는 나와 상관없는 이야기가 됩니다.

도림사라는 절 이름부터 하나하나 흥미로운건 사실이지만

그건 저만 재미있는 것 같아 최대한 간단히 말씀드리면

우리가 부정하고 숨길 뿐이지 내 안의 참나

즉 자기는 끊임없이 우리를 향해 이야기하고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나는 그런 나를 인정할 수 없어라고 말하지만 그게 나에요. 숨길 수 없는 나란 말이에요.

그리고 그것이 또 뭐 어때서요?

귀가 좀 크고 키는 좀 작고 살은 좀 찌고 공부 좀 못하면 어디가 어떻습니까?

다른 사람의 의견이 나의 현실이 될 필요는 없습니다.

누구든 나 자신을 위해서 대신 살아줄 수는 없으니까요.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저도 그 귀를 잡고 그 귀 이야기를 시작해봅니다.

여러분의 귀는 안녕하신가요? 개굴개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