꼰대보존의 법칙(정서로 보는 대한민국 근현대사) 022

2019. 6. 18. 21:58개꿀리뷰

 

https://youtu.be/2GnKNyefoJY

꼰대 보존의 법칙?(정서로 보는 대한민국 근현대사)

 

Who (내가 누군 줄 알아?)

What (니가 뭘 안다고?)

Where (어딜 감히?)

When (나 때는 말야)

How (어떻게 그걸 나한테?)

Why (내가 그걸 왜?)

 

당신은 혹시 이렇게 말하고 있지 않나요?

그렇다면 당신은 꼰대입니다.

이상은 꼰대의 육하원칙이라고 하더군요

 

보통 자기 세대의 가치관으로 시대가 지났음을 인정하지 않고 사회적으로 용인될 만한 다음세대의 문화나 행동에 태클을 걸면 꼰대질한다고 합니다(엔하위키 미러)

그런데 꼰대라는 단어는 이미 1960년대에 젊은이들이 썼다는 사실을 알고 계신가요?

오늘날의 젊은 세대는 1960년대생에게 아마 꼰대라고 할지도 모르겠지만 말이에요.

아무튼 꼰대라는 것을 알기위해서 먼저 우리나라의 근현대사를 살펴볼 필요가 있겠습니다.

근현대사에 대해서 정치적으로나 외교적으로나 역사적으로 추적한 자료들은 많지만 세대와 세대를 이해하고 세대간의 장벽을 허물기 위해서는 정서적인 측면에서 세대들을 돌아봐야 하지 않을까요?

 

아시다시피 대한민국은 해방 후 일본압제의 상흔뿐만 아니라 625 전쟁으로 인해 정말 피폐해질 정도로 피폐해졌습니다. 그래서 그 세대들은 다음세대들에게 이 배고픔과 찢어질 가난만큼은 절대 물려주지 말자라는 심정으로 닥치는대로 일을 했고 어떤 일이든 열심히 해서 성공을 하였습니다. 즉 어제보다 그래도 내일이 더 잘살 것이라는 희망이 있는 세대였으며 그들은 결국 산업화를 이룩하는 선봉의 세력이 되었습니다.

 

산업화에 따른 경제성장에 맞물려 그 다음세대는 사회의 불공평과 특권과 반칙이 판치는 독재와 부당함에 맞써 싸워 다음세대에게 만큼은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편파적이지 않고 원칙대로 살면 정의가 실현될 수 있는 그런 사회를 물려주고자 부단히 애 써왔습니다. 역사는 부당함에 맞써 싸우고 서로가 서로를 위로하는 강한 연대의식으로 민주화를 이룬 이 세대를 민주화 세대라고 부릅니다.

 

산업화에 이은 민주화, 좋게 말해서 양날개를 얻어 날아오른 그 다음세대는 대한민국의 대중문화를 꽃피운 문화세대라고 합니다. 그들은 음악, , 연기, 미술, 영화, 만화 등 다양한 문화에 자유롭게 꽃을 피웠으며 대한민국 문화, 즉 세계적이면서도 한국적인 한류를 이끌었으며 삶의 다양성과 여유에 대한, 즉 삶의 질과 선진문화를 위한 도약에 앞장선 문화혁명세대라고 할만합니다.

 

그리고 오늘날, 태어날 때부터 스마트폰이 있고 정보와 지식이 검색 하나로 모든 것이 가능한 세대, 그들은 간단하고 재미있고 병맛을 추구한다고 하더군요. 그러나 간단하고 재미있는 것을 싫어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리고 병맛이라는 것도 제가 볼 때는 사실 엽기라는 단어가 순화되고 보편화되어 병맛이라고 불리고 있다고 생각됩니다. 아무튼 이처럼 산업화세대가 되었건 민주화세대건 문화세대건 기성세대가 볼 때 오늘날 요즘 세대는 아무것도 하지 않으려하고 쉽고 재미있고 이해할 수 없는 것만 추구하는 희망없는 세대라고 합니다.

 

그들은 말합니다. 너희는 왜 우리처럼 닥치는 대로 일하지 않나? 우리는 어떤 일이든 열심히 해서 성공했다. 너희는 왜 우리처럼 부당함에 맞서 싸우지 않나? 우리는 부당함에 맞서 싸워 승리했다. 너희는 왜 우리처럼 자유롭지 못하고 눈치를 보나? 우리는 자유로운 영혼이라 성공했다.

 

산업화세대, 민주화세대, 문화세대 즉 X세대, 그들의 말들이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닙니다. 그러나 그때와 오늘날의 상황이 다르다는 것을 이해하려 해야 하고 이 다른 상황에 처한 오늘날의 세대의 곤란함과 어려움을 들으려고 할 때, 우리는 세대를 뛰어넘어 대화를 하고 협력하여 선을 이룰 수 있을 것입니다.

 

옛날에는 정말 아무 것도 없어서 노력하면 그만큼 보상을 받을 수 있었던 적지 않은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은 모든게 다 있어서 노력할 자리가 없습니다. 거기에는 이미 노력하면 성공한다는 그 누군가가 오래전에 그 자리를 꽤차고 앉아 자기 자식에게 물려주고 있습니다.

 

독재가 판을 치고 권력이 특정인에 쏠렸던 시절에, 누군가 부당함에 맞서면 혼자 외롭게 두지 않았던 연대의식이 있지만 오래전에 핵가족화 되고 파편화된 문화 속에 태어났고 자란 오늘날 세대에게는 그들의 특별한 연대의식이나 유대감을 찾을래야 찾을 수가 없습니다. 좋게 말하면 오늘보다 내일이 더 낫겠지라는 기성세대의 희망이 결국 과거보다 나은 오늘을 이룩했지만 안타깝게도 모든 것에는 그늘이 있고 그림자가 있기 마련입니다.

 

오늘날의 요즘 세대가 왜 희망이 없고 불안할까요? 그들에게는 이미 이루어진 것들이라는 그림자에, 그 그늘에 놓여있기 때문은 아닐까요? 그들에게 가능성을 찾아 볼 수 없습니다. 모든 것이 이미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자리는 내가 아닌, 이미 가진 자의 자식들이 차지하고 이어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을 더욱 절망적이고 불안하게 하는 것은 오늘보다 내일이 더 낫겠지라는 희망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들의 생각은 오늘보다 더 나은 내일은 고사하고 오늘보다 더 나쁘지 않은 내일만이 있을 뿐입니다. 더 나빠지지 않게, 기성세대가 공들여 쌓아 온 그 탑이 무너지지 않게 지켜내야만 하는 부담감과 의무감만이 있을 뿐입니다. 더 이상 그들은 잘되는 나에 대한 희망이 없습니다. 그보다 욕먹지 않는 나, 그뿐이면 족합니다. 그들에겐 삶의 목적도 없어 보입니다. 모두가 곤란할 때 그곳에서는 영웅이건 독재자건 뭔가 등장하고 그에 뜻을 같이 하는 집단이 형성되어 그들이 원하는 그것을 이루어냅니다.

 

그러나 오늘날, 기성세대 입장에서 볼 때 가질 꺼 다 가진 요즘세대가 왜 저리 의욕도 없고 희망도 없고 목적도 없나? 라고 생각할 것이 아니라 왜 그들은 그러한 생존전략을 선택해야 했는가? 그들의 입장에서 생각할 때 우리는 좀 더 세대 간 이해를 위해 전진이 있지 않을까요?

 

삶의 성공이나 승리 그리고 행복이나 가치에 대한 정의는 세대에 따라 다르고 상황에 따라 다르고 사람마다 다를 것입니다. 내가 옳다고 반드시 옳은 것이 아닙니다. 그들에게는 그들만의 삶의 철학이 있고 그들이 생각하는 삶의 행복이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위해 자신의 인생철학을 정하고 삶의 방식을 결정할 것입니다. 어쩌면 그들이야말로 삶을 진정으로 누리고 여유의 소중함을 알며 가진 것 안에서 자유하며 자신의 인생 가치와 행복에 대해서 스스로 결정하고 책임질 줄 아는 부럽기도 하고 대견한 세대는 아닐까요?

 

기성세대가 생각하는 안타까움과 애석함에 대해서 저 역시 충분히 공감합니다. 저 역시 한때는 요즘세대였고 점차 기성세대가 되어갑니다. 그러나 역사는 세대와 세대를 거쳐 변화해왔고 다음세대는 생각보다 그리고 그 전세대보다 잘해낼 것이라 저는 믿습니다.

 

끝으로 꼰대 보존의 법칙으로 재소개되고 있는 요즘 것들에 대한 짤막한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요즘 것들은 정말 한숨만 나온다. 선생님한테 대들고, 어른 말씀에 논리가 아닌 잘못된 생각으로 덤벼. 수업에는 들어오는데 의지가 없고, 쓸데없는 문제에 관심을 가져. 잘못된 논리에 의지하며 잘 알지도 모르는 것에 그 잣대를 들이대. 그렇게 오류의 화신이 되고는 꼴에 자존심 때문에 모르는 것을 질문하는 것도 창피해 하고 말이야.

그리고 이것들은 주일에는 교회에 가서 예배를 드리는 대신 친구들과 놀러댕기거나 집에 틀어박혀서 뭘하는건지 몰라. 교회를 가도 믿음으로 가는게 아니라 여자애 꼬시러가고 친구랑 장난질이나 하러 가지. 그것들은 부모님이나 교단으로부터 받은 장학금으로 술집과 노는 것에 흥청망청 써버리며 결국 집에 배운 것도 없이 도덕도 없이 돈도 없이 걍 돌아가.

 

이 말은 1311년 영국의 철학자 알바루스 펠라기우스의 글을 옮긴 것입니다. 요즘세대는 1311년이라는 중세시대에도 있었고 자료에 의하면 기원전에도 요즘 세대라는 말이 있었다고 합니다.

 

아무튼, 바른말이 말대꾸고 바른말이 잔소리고 맞는 말이 쳐 맞는 말입니다() 세대간 편가르기를 하고 정죄하고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세대가 세대의 상황과 차이를 인정하고 대화하며 소통을 그려보며 개굴개굴 개꿀리뷰 시청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