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6. 8. 18:36ㆍ개꿀리뷰
6. 죄책감과 수치심(정화의 심리학)
기원전 8세기에 유다에서 활동한 예언자 이사야는
국운이 쇠퇴하면서 강대국의 위협에 노출되어 있는 상황에서 소명을 받았다.
전통적으로 예언자들은 이스라엘의 멸망을 근본적으로
백성들의 죄악으로 인한 하나님의 심판이라고 여겼다.
이사야의 소명설화는 이스라엘을 대변하는 예언자의 죄책감과 정화의식을 보여준다.
이사야는 어느 날 천상회의를 보게 된다.
천사들이 하나님을 찬양하는 모습을 본 그는 갑자기 죄책감을 느끼게 된다:
“재앙이 나에게 닥치겠구나! 이제 나는 죽게 되었구나!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인데, 입술이 부정한 백성 가운데 살고 있으면서,
왕이신 만군의 주님을 만나 뵙다니!”(이사야 6장 5절).
그때 한 천사가 다가와 화로에 있는 숯을 가져와 이사야의 입술에 대면서 죄를 제거해준다.
죄책감을 제거한 후에 그는 비로소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다:
“내가 누구를 보낼까? 누가 우리를 대신하여 갈 것인가?”
방청석에서 천상회의의 비밀회의를 보고 있었던 이사야는,
“제가 여기에 있습니다. 저를 보내어 주십시오!”라고 외쳤다.
이사야가 스스로 하나님의 전령이 되겠다고 자원한 것이다.
이처럼 소명은 전혀 예상치 못한 가운데 갑작스럽게 외부세계로부터 부여되기도 하지만,
때로는 스스로 원해서 소명을 선택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 소명은 온전히 자아의 영역에 속한 것은 아니다.
개인적 차원의 희망과 집단적 차원의 소명은 항상 일치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사야는 하나님의 전령이 되어 풍전등화의 기로에 놓여있는
이스라엘을 구원하고자 했을 것이다.
하나님이 보내신 자는 심판보다는 구원을 선포할 것이라는 기대가 그에게 있다.
그래야 하나님은 사랑과 정의의 하나님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은 자아의 의지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오히려 자아(ego)와 자기(self)는 정반대의 길을 갈 때가 많다.
이사야의 기대와는 다르게 신의 명령은 이스라엘에게 무자비한 심판의 메시지를 전하게 한다.
[10] 너는 이 백성의 마음을 둔하게 하여라. 그 귀가 막히고, 그 눈이 감기게 하여라.
그리하여 그들이 볼 수 없고, 들을 수 없고 또 마음으로 깨달을 수 없게 하여라.
그들이 보고 듣고 깨달았다가는 내게로 돌이켜서 고침을 받게 될까 걱정이다.”
[11] 그 때에 내가 여쭈었다. “주님! 언제까지 그렇게 하실 것입니까?”
그러자 주께서 대답하셨다. “성읍들이 황폐하여 주님이 없어질 때까지,
사람이 없어서 집마다 빈 집이 될 때까지, 밭마다 모두 황무지가 될 때까지,
[12] 나 주가 사람들을 먼 나라로 흩어서 이 곳 땅이 온통 버려질 때까지 그렇게 하겠다.
[13] 주민의 십분의 일이 그 곳에 남는다 해도, 그들도 다 불에 타 죽을 것이다.
그러나 밤나무나 상수리나무가 잘릴 때에 그루터기는 남듯이,
거룩한 씨가 남아서, 그 땅에서 그루터기가 될 것이다(이사야 6장 10-13절).
이사야가 받은 소명은 개인적 소망과는 정반대였다.
“이 백성의 마음을 둔하게 하고, 보지 못하게 해서
심판을 결코 피해가지 못하게 하라.”는 것이 그 요지다.
이사야의 소명은 지나친 죄책감으로 인해
자신에 대한 처벌을 결코 피해가지 못하는 강박적 사고를 보여준다.
그 소명의 과정은 죄책감과, 그에 대한 지나친 심판,
그리고 죽음에 대한 두려움과 공포를 보여준다.
이사야의 탄식은 “도대체 언제까지 고통을 당해야 하는가?”였다.
그 대답은 “모든 것이 황폐화될 때 까지다.”
그러나 마지막 희망은 있다. 끈질기게 살아남아야 할 그루터기다.
그것은 이사야의 끈질긴 생명력이요, 죄책감에 시달리는 모든 사람들의 마지막 희망이다.
이사야의 소명은 이처럼 구원을 위한 심판,
심리적으로 볼 때 치유를 위한 고통이 극한 상황에 이를 때 발생한다.
이사야의 소명은 결국 죄책감으로부터의 절실한 해방과
정화의 필요성이 최고조에 달했을 때 생겨난 것으로 볼 수 있다.
자신의 책임을 다하지 못했거나, 금기를 어겼거나, 민족의 아픔에 동참하지 못했거나,
자신만을 위해 살았거나, 남보다 행복한것들 모두는 우리를 억압하는 죄책감으로 다가온다.
강렬한 죄책감은 자신에 대한 수치심으로 이어지고,
그것은 자아의 존재감에 깊은 회의를 느끼게 한다.
이때 들려오는 내면의 목소리는 죄로부터의 해방과 정화를 필요로 하며,
그것은 죽음을 통해 새로운 생명으로 부활할 것을 요구한다.
이때 소명은 새로운 인격의 탄생을 알리는 신호탄이다.
이상에서 볼 때, 이사야의 소명은 다음과 같은 과정을 보여준다:
1)초월적 존재 혹은 자아를 초월한 전체 인격의 온전성을 경험;
2)과거의 상처와 아픔, 그리고 어두운 그림자를 제거하는 정화의식;
3)소명인식과 저항;
4)소명수용에 따른 탄식과 좌절;
5)고통(심판)을 통한 치유(구원) 경험;
6)생명의 뿌리(존재감) 확인.
다음시간에는 7. 도피의 심리학편으로 우리는 왜 토끼고 싶은가?
아니 왜 도망가고 싶은가 함께 이야기를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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