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기부여05 갈등의 심리학(018) 사무엘의 소명과 존재감

2019. 6. 8. 18:35개꿀리뷰

https://youtu.be/KW3c8KEij0U

5. 갈등의 심리학

 

고대 이스라엘 사회에서 왕권이 확립되기 이전에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했던 이가 바로 사무엘이다.

사무엘은 제사장이자 예언자요 마지막 사사로서 정치와 종교적인 모든 권력을 장악했다.

그의 소명설화는 사무엘이 어릴 때 엘리 제사장을 섬길 무렵에 발생한다.

사무엘의 아버지인 엘가나는 두 아내를 두었다.

그 중 한사람인 브닌나에게는 자녀들이 있었지만, 다른 한 사람인 한나에게는 자녀가 없었다.

사무엘은 한나의 서원기도를 통해 출생한 아들이었다.

브닌나의 학대와 박해를 견딜 수 없어 너무나도 원통하고 괴로워서

아들을 낳으면 주님께 바치겠다고 서원해서 얻은 아들이 바로 사무엘이다(사무엘상 1).

어린 사무엘은 어머니의 서원에 따라 엘리가 제사장으로 있었던

실로의 성소에서 하나님을 섬기는 일을 하게 되었다.

어린 사무엘은 갈수록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았지만,

엘리의 아들들은 아버지의 권력을 믿고 악행을 저지르고 있었다.

사무엘은 이처럼 경쟁으로 인한 갈등과 긴장 속에서 탄생하고

어린 시절을 그와 동일한 환경 속에서 보냈다.

어머니 한나와 브닌나와의 갈등관계는, 사무엘과 엘리의 아들들과의 갈등 관계로 재현된 것이다.

이때 어린 사무엘에게 하나님의 음성이 들렸다.

사무엘이 성전에서 자고 있을 때 사무엘아, 사무엘아!”하고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그는 엘리 제사장이 부르는 것이라 여기고 그에게 갔으나,

엘리는 부르지 않았다고 하면서 잠자리를 재촉했다. 이런 일이 세 번째 반복되자,

엘리 제사장은 사무엘에게 주님이 부르신 것이니 그분의 말씀을 들으라고 일러준다.

그때 하나님께서는 어린 사무엘에게

엘리 아들들의 악행으로 인해 엘리의 집은 심판을 당해 망할 것이라는 예언을 하게 한다.

얼마나 두려운 일인가? 당시 이스라엘의 최고 지도자이자 제사장인

엘리 가문의 비리를 폭로하라니!

그것은 어린 사무엘에게 아버지를 고발하고 심판하는 일과도 같았을 것이다.

다행히도 앨리의 겸손한 자세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뜻은 전해졌고,

이후 사무엘은 하나님의 예언자로 알려지게 되었다(사무엘상 3).

 

사무엘의 소명은 갈등 속에서의 긴장이 최고조에 달할 때 발생한 사건이며,

그것은 아버지 표상의 그림자를 인식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사무엘의 실제적 아버지인 엘가나는 두 아내를 두고 많은 자손을 거느린 것으로 볼 때

상당히 부유한 가문이었던 같다.

그에 비해, 사무엘의 어머니에 대한 언급은 거의 없다.

오히려 한나가 성전에서 기도할 때, 엘리 제사장이

언제까지 술에 취해 있을 것이오? 포도주를 끊으시오.”라고 충고한 것을 볼 때,

한나는 거의 매일 비참함으로 인해 술에 젖어 있었을 가능성이 있다.

그녀는 포도주나 독주를 마시지 않았으며, 슬픈 마음을 가눌길이 없어서

성전에서 기도할 뿐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엘리 제사장의 눈에는 한나가 술에 절어 있는 것으로 보였던 것이다.

남편의 사랑을 받았지만, 자녀가 없음으로 인해 받은 그녀의 고통은

고대사회에서 실로 참혹한 것이었다.

고대 사회에서 자녀가 없고 남편이 돌보아주지 않을 때 여성은 아무런 보호대책이 없었다.

석녀들에게 무자녀는 곧 죽음의 상태와도 같았다.

이런 상태에서 낳은 아들이 사무엘이며,

어린 사무엘은 자신의 의지와는 별도로 태어나자마자 성전에 봉헌된 희생양이었던 것이다.

부모의 소망을 얻은 대신, 자녀는 부모의 희생양이 되는 사건은 얼마나 많은가?

자아가 탄생하기도 전에 갈 길이 정해졌다면, 그것은 자아의 길이 아니고 부모의 길,

더 나아가 공동체와 집단이 부여한 길이다.

그것은 자아의 역할이 부여되기 전에 페르소나의 역할만 부여된 셈이다.

그것도 자신의 페르소나가 아닌 부모의 페르소나다.

모성의 태안에서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는 길을 가야하는 사무엘은

자아를 되찾는 길이야말로 지상 최대의 과제가 된다.

그것은 개인의 과제이자, 우주와 관통하는 자기의 생명력이다.

자아를 살려냄으로써 자기도 살며, 그 때 정신은 온전성을 회복한다.

 

사무엘의 자아는 부모의 그늘에서 벗어나는 길이며, 그것은 오직 반항과 혁명을 통해 가능하다.

그만큼 권력은 과거 지향적이며 폐쇄적이며 변화를 두려워한다.

그러기에 힘없는 자녀는 자신이 망가지는 행동을 통해 부모에게 복수하며,

이를 계기로 부모는 변화된다. 사무엘의 도전은 아버지를 제거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아들은 아버지와의 경쟁에서 이길 때 사회 속으로 나갈 수 있다.

엘리는 사무엘의 아버지 표상이 투사된 대상으로서, 부성원형의 부정적 측면을 대변한다.

이스라엘의 지도자가 되기 위해서 사무엘은 집단적 권리,

즉 지배원리의 어두운 면을 먼저 직시해야만 한다.

이런 사무엘의 무의식적인 의도는 그의 소명과 함께 외부로 표출된다.

아들이 무의식적으로 아버지를 제거하려는 동기는 오이디푸스 신화에 잘 나타나있다.

오이디푸스는 길을 가던 노인을 무심코 죽이고 자신의 어머니를 아내로 삼는다.

아들은 생명의 근원인 모성과의 합일을 위해, 쇠퇴해가는 권력을 제거해야만 한다.

그러나 새로운 시대를 열고자 했던 사무엘도 그와 같은 과정을 반복할 수밖에 없다.

엘리의 아들들처럼 사무엘의 아들들 역시

부정과 부패에 연루되어 백성들로부터 지탄을 받게 된다.

이스라엘은 급기야 사무엘에게 새로운 권력제도인 왕제도를 요구함으로써

이전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공동체를 이루게 된다(사무엘상 8).

사무엘 역시 엘리 제사장처럼 이스라엘 사람들에 의해 개혁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것은 모든 권력은 부패를 낳는다.”는 일반적인 견해보다는,

지배원리의 쇠퇴와 새로운 지배원리의 태동이라는 결핍과 보상 구조에서 보아야 한다.

권력자의 아들은 지배원리의 그림자이며,

그것은 새로운 자아에 의해 제거되거나 변화되어야 한다.

사무엘의 소명은 지배원리, 즉 지금까지 개인이나 공동체를 지배했던

신념이나 이상이 변해야하는 시점에서 발생한 것이다.

아버지의 그림자와 자신의 그림자를 인식해야 하는 절대적 과제가 주어졌을 때 소명은 발생한다.

 

사무엘의 소명 기사는 분석심리학 관점에서 볼 때 다음과 같은 특징을 지닌다.

첫째, 소명은 긴장과 갈등 상황에서 표출된다.

태어나기 전부터 부모에 의해 정해진 인생의 행로는

자아와 페르소나 사이의 긴장과 갈등을 야기하며,

페르소나의 영향력이 커질수록 자아의 상실속도는 그만큼 빨라진다.

사무엘의 소명의식은 심리적 자아의 탄생을 예고하며,

그것은 사회적 권위의 상징인 엘리 제사장에 대한 저항과 제거로 나타난다.

둘째, 소명으로 인해 초월적 영역과 관계를 맺게 된 자아는

일시적으로 자아상실로 인해 혼돈상태에 머물게 된다.

그것은 요나처럼 모성의 자궁(물고기 뱃속)에 머물거나,

모세처럼 광야로 퇴행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사무엘의 일시적 자아상실은 블레셋민족에게 하나님의 언약궤를 빼앗긴 사건으로 드러난다.

하나님의 현존을 상징하는 언약궤는

이스라엘을 지켜주는 수호신의 표상이자 이스라엘의 집단적 표상이다.

블레셋이 언약궤를 탈취해서 자기네 땅에 두는 동안 사무엘과 하나님은 한동안 자취를 감춘다.

자아와 자기, 즉 의식의 중심과 전체정신은

한동안 다른 민족의 손에 맡겨져 혼돈 속에 있게 된다.

그동안 질서를 어지럽혔던 엘리와 그 가문이 몰락한다.

자아는 혼돈 상태에 머물면서 새로운 질서가 태동되기만을 기다렸다가

적당한 기회에 고개를 든다.

셋째, 제사장으로부터 출발하여 선지자와 사사의 역할을 두루 수행한 사무엘은

마침내 절대 권력을 누리게 된다.

사무엘의 과대 팽창은 부분인격인 자녀들의 타락으로 이어지고

그것은 엘리 가문과 같은 몰락의 길을 가게 된다.

소명 수행과정에서 과대자기나 자아팽창은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장애물이자 넘어야 할 산이다.

언약궤의 상실과 지도자 가문의 타락으로 인해 강력한 질서를 상징하는 왕권이 요구된다.

사무엘은 자신이 누린 절대 권력의 함정에서 빠져나오지 못함으로써,

왕제도의 요구에 능동적으로 대처하지 못했다.

그것은 자신이 세운 사울 왕과의 끊임없는 갈등으로 이어졌다.

사울과의 갈등은 다윗의 등장으로 새로운 방향성을 띠게 된다.

넷째, 사무엘의 소명은 집단적 차원에서 볼 때,

이스라엘의 자아가 탄생하기 위한 필연적 과정으로 보인다.

이전 세력의 상징인 엘리 가문의 몰락,

자신의 그림자인 자녀들의 타락과 그에 대한 자아의 퇴행,

절대권력의 소유로 인한 자아팽창과 자기애적 상태로 인한 불안,

새로운 요구에 대한 긴장과 갈등 등이

새롭게 탄생하는 고대 이스라엘의 건국 초기모습을 보여준다.

결국 사무엘의 소명기사는 긴장과 갈등, 퇴행과 팽창,

좌절과 희망을 통해 새로운 자아가 탄생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다음시간에는 6. 죄책감과 수치심(정화의 심리학)을 다루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