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사(기원전후의 역사) 왕과 신들의 전쟁 다큐멘터리 줄거리요약 개꿀리뷰

2021. 9. 14. 19:49개꿀리뷰

https://www.youtube.com/watch?v=jVss3O5VfkU 

https://www.youtube.com/watch?v=ptbHYIYliR4 

 

세계사다큐 왕과 신들의 전쟁(말과 칼)

말과 칼_줄거리요약 세계의 역사

 

1부 고대제국과 종교

1. 중국의 진시황제

2. 인도의 아소카

3. 이집트의 클레오파트라

 

2부 종교와 권력의 결합

4. 기독교와 사도 바울

5. 나스카 문명과 종교

6. 이슬람과 빌랄 이븐 라바

 

 

수천 년 동안 황제와 왕들은

생과 사를 지배하는 무한한 권력을 가졌습니다

그들은 살아있는 신으로 여겨졌으며

신들보다도 더 위대한 존재로 여겨지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용기와 저항

그리고 믿음을 통해

새로운 신앙들이 지상의 권력에 도전했고

말과 칼이 결합해

세계 역사상 가장 위대한 제국들을 탄생시켰습니다

 

 

1. 중국의 진시황제

중국 산시성에 있는 병마용갱(兵馬俑坑)

점토로 만든 이 전사들은

영원히 살고자 했던

한 남자를 지키고 있습니다

진시황제(秦始皇帝)라 불리는

바로 중국 최초의 황제인 영정(嬴政)입니다

영정은 자신의 권력에 만족하지 못했고

영원히 세상을 지배하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영정은

자신의 권력에 한계가 있으며

황제인 자신도 그 한계를

극복할 수 없음을 깨달았습니다

영정은 진나라의 난폭하고 무자비한 왕이었습니다

그는 13살에 왕위에 올라

주변의 모든 경쟁국가들을 정복하러 나섰습니다

그리고 28살에 여러 나라들을 통일하기에 이릅니다

백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포로가 되거나 학살당했고

모든 경쟁국가들은 이제 하나가 되었습니다

영정은 자기 민족의 이름을 따서

이 통일제국에 진()이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그에겐 중국이 유일한 문명사회였습니다

영정은 자신을 최초의 황제

, ‘시황’(始皇)이라고 불렀습니다

진시황은 4200만 명이 사는 제국을

공포와 압제로 다스렸습니다

모든 무기를 압수했고

하늘 아래 모든 것을 다스렸다고 합니다

하지만 권력에 대한 갈망은 채워지지 않았습니다

진시황은 백성들을 완전히 장악하고 싶었습니다

그는 모든 정적들을 제거했고

존경받는 철학자인 공자(孔子)의 저서를

금서로 만들었습니다

진시황은 기원전 213

대규모의 분서(焚書)를 명령했습니다

그로부터 1년 후

금서를 소장하고 있는

460여명의 학자들이 발각되었는데

그들은 모두 생매장당했습니다

 

공자는 백성들을 존중하며

지혜롭게 통치하는 지도자가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진시황의 관심사는 오직 자신의 권력뿐이었고

더 많은 것을 원했습니다

그는 불멸을 갈망했습니다

진시황의 통치를 기리는 웅장한 기념물을 짓기 위해

엄청난 노동력이 차출되었습니다

영토 북쪽에는 만리장성이 세워졌으며

새로운 도로와 운하

그리고 수로들도 만들어졌습니다

화폐와 문자를 통일하고

법체계를 정비했으며 경제가 번성했습니다

그래도 부족했습니다

권력을 향한 진시황의 욕망은 식을 줄 몰랐습니다

고대의 자료에 따르면

진시황의 가장 거대한 프로젝트는

웅장한 황궁이었다고 합니다

70만 명의 노동력이 투입된 공사였습니다

이 거대한 지하세계는

이집트 기자의 대피라미드보다

1,000배 이상 크다고 합니다

총면적이 57에 걸쳐 펼쳐진 황릉은

여의도의 7배에 달하는 크기입니다

내부는 중국 전체를 옮겨놓은 축소판으로

진시황의 사후통치를 위한 왕국인 셈입니다

 

고문서에는 거대한 청동황궁에 대해서도 나와 있는데

그 중심에 황제의 묘가 있습니다

묘 주위에는 중국의 강들이

축소모형으로 배치되어 있는데

이 강들에는 수은이 흘렀습니다

중국의 연금술사들은

수은에 망자를 되살리는 힘이 있다고 믿었습니다

이 황릉은 불멸에 대한 황제의

커져가는 집착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진시황은 나이가 들어갈수록

죽음을 더욱 두려워했습니다

기념물들만으로는 그의 영생을

더이상 보장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진시황은 연금술사들을 시켜

불로장생(不老長生)의 약을 만들게 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 약은 황제의 신경계를 망가뜨렸습니다

그가 먹은 약의 주재료는

치명적인 독인 수은이었던 것입니다

진시황은 불멸을 얻기 위한 싸움에서 패했고

이승에서의 권력도 그와 함께 죽었습니다

하지만 점토로 만든 전사들은

영원히 내려오지 않을 명령을 기다리듯

황제의 곁을 지키고 있습니다

 

2. 인도의 아소카

 

중국에서 3,000km이상 떨어진 인도에서는

무자비한 또 다른 황제가 자신의 권력을 이용해

세상에 평화를 전하는 새로운 길을 발견하게 됩니다

고대의 전설에 따르면 기원전 3세기, 인도

아소카라는 한 왕자가

특별한 검을 찾아다녔다고 합니다

왕자의 할아버지가 제국을 건설할 때 사용했던 검인데

그 후에 내다 버렸다고 합니다

오늘날의 인도와 파키스탄

그리고 방글라데시 거의 대부분이

마우리아 제국이었습니다

 

중국과 마찬가지로 정복과 학살

강제노동을 통해 건설된 제국입니다

할아버지는 검의 악한 기운에 대해 경고했지만

아소카는 그 검의 유혹을 물리칠 수 없었습니다

기원전 273,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자

아소카가 형제들을 학살하고

왕위를 차지했다고 합니다

아소카의 군대는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무려 10만 명을 학살했습니다

마하나디강은 그들이 흘린 피로

며칠 동안이나 붉게 물들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승리한 아소카는

자부심도 기쁨도 느끼지 못했습니다

대신 그는 회한과 비탄에 사로잡혔습니다

그리고 그때, 아소카는 무력을 포기했습니다

그 후로 아소카는 불교에 귀의했습니다

 

불교철학은 그에게

모든 생명은 연결되어 있으며

연민이 존재의 초석이라는 가르침을 주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앞으로 무력은 사용하지 않을 것이며

오직 설득을 통해서만 정복할 것이라고 다짐했습니다

아소카는 손에서 칼을 놓고

새로운 종류의 법을 제정했습니다

노예매매를 폐지하고

가난한 이들을 위한 학교와 병원을 세웠습니다

그의 법은 사람과 동물들 모두에 대한

연민의 정을 장려했습니다

아소카는 제국 각지의 돌에 이 법을 새겼습니다

아소카 칙령으로 알려진 이 법은

그리스어와 아람어로도 번역되었습니다

칼링가 전장에 새겨진 돌을 포함해

오늘날에도 그 일부를 볼 수 있습니다

아소카 칙령은 국제법보다 2,000년 이상 앞서는

사상 최초의 국제인권선언으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아소카 왕은 평화를 수출한 최초의 황제였습니다

 

그는 미지의 세계로 불교 선교사들을 파견했습니다

그들은 30년 만에 베트남과 스리랑카

지중해까지 뻗어 나갔습니다

오늘날 전 세계의 불교신자는 10억 명이 넘습니다

아소카는 나이가 들면서 삶을 간소화하고

마지막 소유물들은 나눠줬습니다

그가 세상을 떠난 뒤에 남은 것은

망고 반쪽뿐이었다고 합니다

아소카는 무력을 포기하고

세속적인 권력의 한계를 깨달음으로써

세상을 변화시켰습니다

 

3. 이집트의 클레오파트라

 

하지만 이집트에서는

자신이 살아있는 신이라고 믿는 한 통치자가

지상에서 가장 위대한 권력에 저항하려 했습니다

기원전 48, 이집트

3,000년 동안 지속해온 위대한 파라오 제국은

몰락 직전의 상황에 놓여 있었습니다

이집트는 지중해의 새로운 강국인

로마에 빚을 지고 있었습니다

클레오파트라는 자신을

이시스 여신의 화신으로 내세웠습니다

 

이시스는 이집트 왕좌의 수호신입니다

클레오파트라는 나일강의 아름다운 여왕으로

역사에 남아있습니다

하지만 수사학과 철학, 과학을 공부했으며

최소한 5개국어를 할 수 있었습니다

21살에 클레오파트라는 남동생인

프톨레마이오스에 의해 권력에서 밀려나 있었지만

이집트를 지배하겠다는 의지는 확고했습니다

그녀의 계획은 알렉산드리아에서 실행됩니다

수도였던 이 도시에

지중해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남자

율리우스 카이사르(시저)가 와 있었습니다

CAIVS IVLIVS CAESAR

카이사르는 무자비한 전사였고

로마의 패권을 차지하고자 하는

야심에 찬 정치인이기도 했습니다

클레오파트라는 카이사르에게

자신과 이집트의 운명을 걸어보기로 했습니다

그녀의 남동생이 이 둘을 갈라놓기 위해

궁전에 보초를 세웠지만

클레오파트라는 카이사르의 방으로 숨어들었습니다

 

카이사르와 클레오파트라는 나일강을 따라

승리의 행진을 하며 동맹을 맺었습니다

클레오파트라는 이미 카이사르의 아들인

카이사리온을 임신 중이었습니다

훗날 이집트와 로마의

지배자가 될 수도 있는 아이였습니다

두 거대한 제국이

하나가 될 가능성도 있었습니다

한편 로마에서 카이사르는

신들과 동등한 대접을 받았습니다

카이사르는 하늘의 신이자 천둥의 신인

유피테르(Ζεύς/Jupiter)를 상징하는

색을 얼굴에 칠했고

그를 추종하는 종교집단도 생겼습니다

 

그들은 카이사르를

유피테르 율리우스라고 불렀습니다

7월을 뜻하는 July

율리우스에서 유래한 것입니다

그리고 기원전 44, 율리우스 카이사르는

마침내 스스로 로마의 종신독재관의 자리에 오릅니다

살아있는 신이 도를 넘은 것이었습니다

카이사르가 클레오파트라와 결혼해

로마제국의 수도를 이집트로

옮길 계획이라는 소문이 돌았습니다

그가 원로원을 폐지할 것이라는 이야기도 있었습니다

 

로마의 정치인들은 분개했습니다

315, 카이사르가 원로원 회의에 참석했을 때

그는 탄원서에 정신이 팔려 있었습니다

카이사르의 죽음은 수년간의 내전으로 이어졌습니다

기원전 30, 전투는 이집트까지 확산되었습니다

카이사르의 적들이 클레오파트라를 찾아왔습니다

클레오파트라는 궁지에 몰렸지만

이 살아있는 여신은 항복을 거부했습니다

 

클레오파트라는 훗날

이집트의 마지막 파라오로 기억됩니다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왕국이

로마의 점령국 중 하나로 전락했습니다

카이사르는 중대한 유산을 남겼습니다

그의 후임자들이 모두

살아있는 신으로 숭배된 것입니다

하지만 로마의 신격화된 황제들은

지구에서 가장 강력한

종교의 도전을 받게 됩니다

 

개꿀리뷰 세계사

 

 

4. 기독교와 사도 바울

 

서기 36년 예루살렘

기독교의 전설에 따르면

사울이라는 유대인 상인은

로마인에게 천막을 공급하는

성공한 사업가였다고 합니다

모범적인 시민이었고 로마인을 존중하는

독실한 유대교도였습니다

그는 어느 날 스데반이라는 남자가

몇 년 전에 십자가에 매달려 죽은

목수의 아들이 메시아였다고

유대인의 구세주였다고 주장했습니다

 

유대인에게 이는 신성모독이었고

죽음으로 다스려야 마땅한 범죄였습니다

스데반은 이렇게 기독교 최초의 순교자가 되었습니다

그 후로 사울은 이런 말썽꾼들을

잡으러 다니기로 했습니다

하지만 이 일은 갑자기 끝났습니다

사울의 말에 따르면

눈 부신 빛이 그를 쓰러뜨렸다고 합니다

 

그때 그는 기독교인의 박해를 멈추라고 말하는

예수의 목소리를 들었습니다

일행이 사울을 오늘날 시리아의 수도

다마스쿠스(다메섹)로 데려갔고

그는 사흘 동안 식음을 전폐했습니다

아나니아라는 기독교인이 그에게 손을 대자

사울의 눈에서 비늘이 벗겨졌다고 합니다

사울이 다마스쿠스로 가는 길에 경험한 일은

그의 삶과 역사의 흐름을 바꿔놓게 됩니다

 

 ‘바울이라고 불리게 된 그는

새로운 임무에 착수했습니다

바울은 유대인뿐 아니라 듣고자 하는 모든 이에게

기독교를 전파하고 싶었습니다

그때까지 예수 그리스도의 추종자들은

모두 유대인이었지만

기독교는 모든 사람에게

열린 종교였습니다

바울이 새로 찾은 신앙의 힘은

유대인이 아닌 수천 명의 사람들에게

예수가 이교도와 자유인

그리고 노예까지

모든 이들을 구원하러 왔다는

믿음을 심어주었습니다

 

바울은 아라비아에서 로마까지

16,000km가 넘는 길을 걸어가며

사람들을 개종시켰다고 합니다

도중에 난파를 당하고 매를 맞으며

갈증과 굶주림에도 시달렸지만

결코, 포기하지 않았고

어딜 가든지 기독교 공동체를 만들었습니다

바울이 예루살렘 신전에서 복음을 전하는 가운데

폭동이 일어났습니다

바울은 로마에서 재판을 받고

처형당했습니다

바울의 순교에 감동한 이들은

신앙을 위해 죽음을 무릅썼고

기독교 순교자들의 용기는

로마의 신격화된 황제들을 위협했습니다

 

지상의 왕과 황제들의 권력은

이제 새로운 신앙의 도전을 받게 되었습니다

로마의 콜로세움을 비롯한

제국 곳곳의 원형경기장들에서

기독교인 처형은 인기 있는 구경거리였습니다

서기 20337일 아침의 북아프리카

몇 명의 죄수들이 오늘날 튀니지의 수도 튀니스 근처

카르타고의 원형경기장으로 끌려왔습니다

그중에는 비비아 페르페투아(Vibia Perpetua)라는

젊은 여성도 있었습니다

기독교 신앙을 거부하지 않은 죄로

사형선고를 받은 여인이었습니다

 

페르페투아는 자신이 받았던

학대에 대한 글을 남겼습니다

페르페투아는 이미 많은 고통을 당했습니다

아버지는 딸을 살리기 위해

신앙을 부인하도록 애썼습니다

그는 슬픔으로 미쳐갔습니다

남편은 아내를 버린듯하고

아기는 아팠습니다

사형이 집행되기 전날 밤

페르페투아는 범상치 않은 꿈을 꾸었습니다

그녀는 그 꿈을 통해 자신이 짐승들과 싸우는 것이 아니라

악마하고 싸운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합니다

 

이처럼 기독교 순교자들의 생각을

들여다볼 기회는 흔치 않습니다

이 기이한 꿈에 대한 기록은

페르페투아가 마지막으로 쓴 글이었습니다

하지만 군중 속의 목격자가

그날 그녀의 운명을 기록했습니다

군중들은 사형수를 데리고 나오라고 소리쳤고

그들은 침묵하는 가운데 칼을 받아들였습니다

페르페투아가 죽은 지 100년이 안 돼

기독교는 제국 전역으로 확산되었습니다

결국, 337년에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기독교로 개종하기에 이릅니다

이제 기독교와 지상의 권력이 결합해

서양 세계의 중요한 토대를 이루게 됩니다

 

5. 나스카 문명과 종교

 

이 시기에 남아메리카의 원주민들은

자신의 세계가 몰락하는 것을 막기 위해

신들에게 도움을 청하고 있었습니다

오늘날의 페루에는 5세기와 6세기에

나스카인들이 지상에 새겨 놓은

이 거대한 형상들이 있습니다

동물이나 곤충을 그린 각각의 윤곽은

축구경기장만 한 크기입니다

하늘에서나 봐야 제대로 감상할 수 있습니다

1930년대에 처음 비행기들이 여기를 날았을 때

이 그림들은 신들에게 바쳐진 것으로 여겨졌습니다

 

나스카인들은 신들이 자연에 있다고 믿었고

신들의 노여움을 풀기 위해

인간 제물을 바쳤습니다

지금은 황무지인 이곳은

한때 나스카 문명의 성도인

카후아치였습니다

수십 개의 광장과 신전들이 있었고

30m 높이의 중앙 피라미드가

우뚝 솟아있었습니다

종교 지도자가 지배하는 도시였습니다

성직자는 갓난아기일 때 선택되어

두개골에 판자를 대고 붕대를 묶었습니다

두개골이 길게 늘어날 때까지

붕대를 단단히 감아두었습니다

 

사람의 머리도 제물로 바치곤 했습니다

사람의 머리가 성스러운 힘을 상징한다고 여기고

자연을 다스리기 위해 제물로 바친 것입니다

이 가혹한 기후에서 번성한 식물은

우아랑고(huarango) 나무들뿐이었습니다

이 나무는 나스카인들에게 그늘과 연료, 건축자재

열매에서 나오는 영양가 높은 시럽을 제공했습니다

하지만 나스카 문명은 재앙으로 치닫고 있었습니다

인구가 늘어나면서 더 많은 식량이 필요해졌고

농토를 확보하기 위해

우아랑고 나무들이 뽑혀나갔습니다

하지만 이 나무들의 깊은 뿌리는

사막 생태계에 꼭 필요한 요소였습니다

흙을 붙들어 주던 게

바로 우아랑고 나무였던 것입니다

나무들이 사라지자

땅은 비바람에 노출되고 취약해졌습니다

535년에서 536년까지

성직자의 능력이 시험대에 올랐습니다

유난히 흐리던 하늘은 흉작으로 이어졌습니다

이 시기는 전 세계에

태양이 뜨지 않은 해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 후엔 30년 동안 비가 내렸습니다

우아랑고 나무들이 없어

흙이 그대로 쓸려나갔습니다

 

그다음에는 30년 동안 가뭄이 찾아왔습니다

농작물과 함께 나스카인들도 죽어갔습니다

성도였던 카후아치는 폐허로 변했고

나스카 문화는 사라졌습니다

나스카 문명이 쇠퇴하는 동안

아라비아 사막에서는 어느 부족민들이

권력과 종교의 힘을

로마인들보다 훨씬 더 성공적으로

결합하기 직전이었습니다

이들의 신앙은 오랜 세월을 견디게 됩니다

 

6. 이슬람과 빌랄 이븐 라바

 

620년 메카

빌랄 이븐 라바

에티오피아 출신의 흑인 노예였습니다

그는 남몰래 급진적인 새 종교

이슬람교를 믿고 있었습니다

유대인과 기독교인처럼

이슬람교 신자들도 유일신을 믿었습니다

예언자 마호메트는

부자나 가난한 사람이나

자유인이나 노예나

신 앞에 모두가 평등하다고 설교했습니다

또한, 사람들의 삶을 지배하는 힘은

지상의 지도자들이 아닌

신에게 있다고 가르쳤습니다

 

이슬람이라는 말은

신에게 복종한다는 뜻입니다

부족의 권력자들에게는 도전이었습니다

빌랄의 주인인 움마야 이븐 칼라프는

한 부족의 족장이었습니다

자신의 노예 중 한 명이

마호메트의 추종자라는 사실을 알게 된

움마야는 즉시 대응했습니다

빌랄은 마호메트의 가르침을

부정하라는 명령을 받았습니다

그는 굴복하지 않았습니다

빌랄의 고난과 신앙심에 대한 소식은

마호메트에게 전해졌고

그는 동료를 보내 빌랄을 해방시켰습니다

 

예언자와 추종자들의 도전이 거세지자

부족장들은 이들을 메카에서 몰아냈습니다

빌랄은 이들과 메디나로 달아났지만

마호메트의 군대는 아라비아반도 부족들을 상대로

잇따라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632, 마호메트가 세상을 떠날 즈음엔

아라비아의 많은 부족들이

이슬람교도로 통합된 상태였습니다

이슬람교는 같은 이슬람교도끼리의

전쟁을 금지했습니다

그 대신 이들은 성전에 목숨을 바쳐야 했습니다

 

지하드

신념과 공동체

이슬람교를 지키기 위한 투쟁입니다

빌랄은 최초의 모스크 건설을 도왔고

이슬람교에서 기도시간을 알리는

아잔을 처음 시행한 사람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한 노예의 꺾일 줄 모르는 신앙심은

전 세계의 수백만 명에게 귀감이 되었습니다

앞선 기독교 순교자들처럼

신앙에 목숨을 바친 이슬람의 전사들은

천국으로 가는 길을 보장받았습니다

하나의 언어와 신으로 통합된 이슬람교는

역사상 어떤 종교보다도 빠르게 확산되었습니다

 

마호메트가 죽은 지 120년이 안 돼

그의 추종자들은 중앙아시아에서 스페인까지

여러 사회를 정복했는데

로마제국보다도 넓은 면적이었습니다

역사상 가장 발달한 몇몇 문명이

이슬람교의 이름으로 세워졌습니다

오늘날에는 전 세계의 15억 명이 넘는 이슬람교도가

빌랄과 함께 시작된 기도의 부름에 응하고 있습니다

 

불과 천년만에 칼의 힘은

새로운 종교와 결합했습니다

이 결합은 인간으로 하여금

역사상 가장 강력한 힘을 발휘하게 하였습니다

다음 시간에는 성전(聖戰)

바이킹의 공격

유목민의 정복

그리고 전 세계를 비춘

학문의 빛을 알아보기 위해

전쟁과 지식의 시대로 찾아뵙겠습니다

시청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종교 권력

 

이야기를 소개하고 이야기를 들려주는

원작이 보고 싶고 원작이 궁금한

개굴개굴 개꿀 줄거리요약 개꿀리뷰

Dr. Gaegool

 

문사철심(문학 역사 철학 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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