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드릭비크너설교02)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성탄)

2019. 10. 6. 23:43아는목사

https://youtu.be/dgXtrWZOTag

 

02비크너_탄생

 

여관 주인

 

마리아가 첫 아들을 낳아서, 포대기에 싸서 구유에 눕혀두었다. 여관에는 그들이 들어갈 방이 없었기 때문이다(누가복음 2:7_새번역)

 

여관 주인이 말했습니다. “아주 오래전 일이네. 멀고 먼 곳에서 있었던 일이지. 하지만 사람의 기억도 그만큼 오래가는지라 사람들은 그때 내가 맡았던 서글프고 괴이한 역할을 도무지 잊을 줄을 모르네. 그러면서도 정작 그 역할에 대한 진실은 잊어버리곤 하더라고. 하지만 그런다고 사람들을 나무랄 수는 없네. 진실이란 놈이 원래 그렇게 미묘하고 미꾸라지 같거든. 따지고 보면 진실과 거짓의 차이는 결국 눈꺼풀의 떨림이나 목소리의 어조에 불과한지도 몰라. ‘난 믿어!’라고 힘주어 말한다면 거짓말이지만, 담담한 어조의 난 믿어는 사실일 수 있거든. 그러니 이런 미묘한 문제를 망각한 채 그 사건 속의 나를 시커먼 악당으로 여기는 후대 사람들을 탓할 수는 없겠지. 그들은 나를 방 없어요! 방 없어요!라고 말한 무정한 사람으로 취급한다네. 그래, 내게 악당 같은 모습이 조금 있었을지도 몰라. 하지만 온전한 진실을 말하려면, 나를 악당이라 부를 때도 머뭇거림이나 떨림, 주저함 정도는 있어야 하고, 눈에는 눈물이 어른거려야 할 걸세. 알다시피, 시커멓기만 한 것은 없잖나. 사람의 마음도 다를 바 없다네.”

여관 주인이 말을 이어갔습니다. “나는 산전수전 다 겪은 사람이네. 이상주의자가 아니라 현실주의자란 말이지. 여관을 운영하는 게 어떤 건지 아나? 아니, 거기까지도 갈 것도 없어. 사업이 됐건 가족이 됐건 인생이 됐건 이 세상에서 뭐라도 꾸려가는 게 어떤 건지 아느냔 말이네. 백만 그루 나무가 있는 숲에서 길을 잃는 것과 같아.” 여관 주인의 말이 이어졌습니다. “각각의 나무는 내가 해야 할 일이라네. 모든 침대에 깨끗한 아마포가 깔려 있는가? 아이들이 겉옷은 챙겨 입고 밖에 나갔나? 편지는 썼나, 책은 읽었나? 은행에 남은 돈은 충분한가? 오늘은 배 속에 음식을 채워 넣고 몸에 옷가지라도 걸치고 있지만, 내일도 그럴 수 있을까? 백만 그루의 나무, 백만 가지의 일거리.”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 다른 것은 보이지 않게 되지. 눈에 보이는 것은 다 물건이 되어버린다네. 발밑 땅바닥에 쓰러진 참새는 죽음의 신비가 아니라 발로 차버려야 할 물건이지. 창문 밖에서 아이들이 떠드는 소리는 정신 사납고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것일 뿐, 생명도 아니고 놀라운 기적도 아니라네. 어디서 오는지 알 수 없게 갑자기 공기 중에 실려 오는 부드러운 속삭임은, 그저 바람, 바람일 뿐…….”

그 사람들이 왔던 저녁은 물론 또렷이 기억한다네. 장부 정리를 하다가 고개를 들었는데 때마침 그 여자가 문으로 들어오는 거야. 막달의 임산부 특유의 느리고 묵직한 걸음이었네. 그 모습이 마치 꿈속에서 걷거나 바다 밑바닥을 걷는 것 같았네. 조금 뒤편에 남편이 서 있었는데, 말을 잘 못 하는 무력한 사람 같았지. 두 사람 중 누군가가 무슨 말을 했는지 기억나진 않지만 말을 하기는 했을 거야. 어쨌건 대체로 입을 다물고 있더군. 가난한 사람들의 어색한 침묵. 내 말뜻 이해할 거라 믿네. 그 사람들이 원하는 건 분명했어.”

별들은 이미 나와 있었네. 여관 안에 앉아 있던 내가 무슨 수로 기억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그날의 별들을 똑똑히 기억한다네. 아내의 고양이가 내가 앉아 있던 탁자로 뛰어올라왔지. 물론 나는 그 사람들 때문에 일어서지 않았지. 한동안 침묵이 흘렀어. 그다음부터는 자네들이 이미 들었던 것과 다르지 않아. 남은 방이 없다는 말은 거짓말이 아니었네. 정말 방이 없었으니까. 아니, 어쩌면 방이 하나 있었을 수도 있겠군. 내가 거짓말을 했을 수도 있겠어. 하지만 그건 그들을 위한 배려이기도 했네. 여관의 형편만 생각한 것이 아니었어. 그런 치들은 마구간에서 더 편안해한단 말일세. 그게 전부야. 나는 그렇게까지 몰인정한 사람은 아니라네. 하나님은 아시지.”

여관 주인이 말했습니다. “그날 밤 늦게 아기가 태어났을 때, 나는 그 자리에 없었네. 숲 속 어딘가에서 길을 잃었거든. 백만 그루의 나무가 있는 현실의 숲에서 말이지. 지하 저장고까지 열다섯 계단, 아래로 내려갈 때는 머리 조심. 왼쪽에는 장작. 불이 꺼지면 심장이 얼어붙는다고. 바람만 불어, 바람만. 나는 산전수전 다 겪은 사람이네. 그래서 아기가 태어났을 때 그 자리에 없었고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네. 없던 존재가 생겨난 바로 그 순간에 내가 들은 것이 있지 않느냐고? 글쎄, 내가 무엇을 들은 것인지 잘 모르겠어. 하지만 이것은 분명히 안다네. 나의 진정한 사랑 말일세. 사람은 진정한 사랑이 찾아오기를 평생 기다린다네. 누구나 그렇지. 우리의 운명, 우리의 기쁨, 마음의 소원을 기다리는 거지. 이 말을 어떻게 해야 할까? 그가 왔을 때 나는 그를 놓쳐버렸어.”

나를 위해 기도해주게나, 형제자매들이여. 여관 주인을 위해, 우리 모두를 위해 기도해주소서, 나의 진정한 사랑이시여.”

 

동방박사

 

헤롯 왕 때에, 예수께서 유대 베들레헴에서 나셨다. 그런데 동방으로부터 박사들이 예루살렘에 와서 말하였다.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에 계십니까? 우리가 동방에서 그의 별을 보고, 그에게 경배하러 왔습니다.” (마태복음 2:1-2_새번역)

 

현인이자 점성술사인 동방박사 중 한 사람이 말했습니다. “‘아름다운 낯선 자들을 조심하십시오. 금요일에는 배를 타지 마십시오. 태양이 금성의 집으로 이동하고 있으니 마음의 일들이 잘될 것입니다.’ 우리는 헤롯에게 이렇게 말했소. 어쨌든 비슷한 취지의 말이었소. 물론 아무 의미도 없는 말이었지. 그에게 뭔가 가치 있는 말을 해주려면 몇 주, 어쩌면 몇 달에 걸쳐 연구하면서 그가 태어난 때는 물론이고 그의 부모와 그 위로 4대에 이르는 조상들이 태어난 정확한 순간의 행성들의 위치를 계산해야 했을 거요. 하지만 헤롯은 그런 것을 전혀 몰랐소. 그저 우리가 되는 대로 던지는 허튼소리를 배고픈 개처럼 넙죽넙죽 받아먹고 고마워할 뿐이었소. 그는 왕이었지만 길 잃은 사람이었던 거요. 유대인도 로마인도 아니었기에 어디에서도 편안함을 느끼지 못했소. 그는 아무것도 믿지 않았소. 올림포스의 제우스도, 이름을 부를 수 없는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도. 그래서 오히려 아무것이나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었소. 우리가 내놓은 몇 가지 점괘도 송두리째 집어삼키더군. 그러나 그가 우리에게 원하는 것이 그런 점괘가 아니라는 것은 너무나 분명했소.”

“‘가서 아이를 잘 찾아보시오.’ 그렇게 말하는 왕의 손이 떨리는 걸 보았소. 그래서 이가 부딪치듯 에메랄드 반지들이 서로 부딪쳐 달그락 소리가 났소. ‘찾거든 나에게 알려주시오. 나도 가서, 그에게 경배할 생각이오.’ 그 말을 마치자 그의 손은 죽음처럼 움직임을 멈추었소. 죽음처럼. 하나 물어봅시다. 세상의 어떤 왕도 다른 왕에게 엎드려 절하지 않는다는 것을 별에게 물어봐야 알겠소? 그 교활하고 길 잃은 늙은 여우가 우리를 어린아이 취급한 거요. 그래서 우리는 아이들처럼 대답했소. ‘네 알겠습니다.’ 그리고 길을 떠났소. 그의 두 손은 나방처럼 파닥거리며 그의 목으로 날아갔소.”

“‘우리는 어쩌자고 그렇게 멀리까지 찾아가 그때 그 자리에 있었을까? 직접 그 장소를 찾아가 목도하지 않더라도 비밀을 아는 것으로 충분하지 않았을까이 물음에는 별들도 답해주지 않았소. 별들은 그가 태어날 거라고만 말했을 뿐이오. 우리에게 가라고 했던 것은 전혀 다른 목소리였소. 하늘 저편 깊숙이 있는 별처럼 우리 안에 깊숙이 자리 잡은 목소리였소.”

그런데 우리는 왜 갔을까? 지금도 그 이유를 알 수가 없소. 그때도, 심지어 그리로 가면서도 알 수 없었소. 우리에게 동기가 없었던 것은 아니오. 동기야 너무 많아서 문제였지. 우리에게 호기심이 있었소. 지혜롭다는 것은 영원히 호기심을 갖는 것이고, 우리는 대단히 지혜로웠으니까. 우리는 별들도 그 앞에서 절한다는 분을 직접 보고 싶었소. 별들이 말하는 바가 사실인지 보고 싶었소. 지혜로운 자들에게도 의심은 있는 법이니까. 그리고 갈망이 있었소. 갈망, 목말라 죽어가는 사람이 왜 물이 있을지 모른다는 가능성만 믿고 불처럼 뜨거운 모래를 몇 킬로미터씩 기어가겠소? 그런데 우리에겐 받고 싶은 마음뿐 아니라 뭔가 드리고 싶은 갈망도 있었소. 떠나기 전에 사랑하는 사람에게 줄 뭔가를 갖춰놓으려고 평생 힘들게 일하고 분투하는 사람의 마음은 어디에서 온 걸일까?”

그러다 마침내 우리는 별이 가리키는 장소에 도착했소. 밤이었소. 지독히 추웠소. 안내가 필요하지 않았지만 여관 주인은 길을 알려주었소. 경솔하고 바쁜 사람이었지. 건초 냄새는 향긋했고 가축의 입에서는 입김이 나왔소. 남자와 여자, 둘 사이에 왕이 있었소. 우리는 오래 머물지 않았소. 그런데 몇 분에 불과했을 그 시간이 천만 년처럼 느껴졌소. 우리는 준비해 간 어리석은 선물들을 지푸라기 위에 내려놓고 나왔소.”

두 가지 끔찍한 것을 말해주리다. 우리가 신생아의 얼굴에서 봤던 것은 죽음이었소. 바보라도 그것을 알아봤을 거요. 그가 맞이하게 될 죽음이 면류관처럼, 박쥐처럼 그 머리 위에 있었소. 그리고 우리는 발밑의 땅처럼 확실하게 깨달았소. 그와 함께 머무는 것은 그 죽음에 함께하는 일이 될 것임을. 그래서 우리는 떠난 거요. 선물만 드리고 나머지는 다 갖고 나온 셈이오.”

이제, 형제들이여, 질문 하나만 합시다. 무서운 질문이오. 하나님은 아시지만, 이것은 내가 스스로에게 던지는 물음이기도 하오. ‘모든 진실 너머, 별들 너머의 진실은 바로 이것, 그분 없이 사는 것이 진짜 죽음이요 그분과 더불어 죽는 것이 유일한 생명 아닐까?’”

 

목자

 

그 지역에 목자들이 밤에 밖에서 자기 양 떼를 지키더니 주의 사자가 곁에 서고 주의 영광이 그들을 두루 비추매 크게 무서워하는지라. 천사가 이르되 무서워하지 말라.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오늘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너희가 가서 강보에 싸여 구유에 뉘어 있는 아기를 보리니 이것이 너희에게 표적이니라 하더니 홀연히 수많은 천군이 그 천사들과 함께 하나님을 찬송하여 이르되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하니라. 천사들이 떠나 하늘로 올라가니 목자가 서로 말하되 이제 베들레헴으로 가서 주께서 우리에게 알리신 바 이 이루어진 일을 보자하고 빨리 가서 마리아와 요셉과 구유에 누인 아기를 찾아서 보고 천사가 자기들에게 이 아기에 대하여 말한 것을 전하니 듣는 다 목자들이 그들에게 말한 것들을 놀랍게 여기되 (누가복음 2:8-18)

 

목자가 말했습니다. “밤이 오고 있었지. 날은 추웠어. 정말 겁나게 배가 고팠지. 자루에 담아 온 빵은 다 먹은 지 오래였어. 먹을 것을 더 내놓으라고 배 속이 성화였어. 그런데 나와 같은 목동 친구가 빵 껍질을 안 먹고 버리려는 게 눈에 들어온 거야. 그래서 말했지. ‘친구, 빵 껍질은 내게 던지게!’ 그런데 친구가 내게 던진 빵 껍질이 그만 우리 사이, 양들이 엉망으로 만들어놓은 진흙탕에 떨어진 거야. 하지만 어쨌거나 난 빵 껍질을 집어먹었어. 거기 묻은 진흙까지 다 입에 넣었지. 그런데 그걸 먹고 있으려니 갑자기 내 자신이 보이는 거라. 내가 먹는 사람일 뿐 아니라 먹는 사람을 지켜보고 있는 사람인 것처럼 말이지. 이런 생각이 들었다고. ‘이게 나야. 진흙투성이 빵을 먹는 사람이야.’ 그리고 이런 생각을 했어. ‘빵이 정말 좋군.’ 그리고 이런 생각도 했어. ‘, 진흙도 너무 좋구나.’ 그래서 나는 한가득 빵이든 진흙투성이 입을 열어 친구들에게 외쳤어. ‘하나님 맙소사, 아주 좋아, 형제들이여!’ 그들은 내가 바보 천치라고 생각했지만, 그래도 내 말뜻을 알아들었어. 그날 밤 우리는 모든 것을 봤거든. 모든 것 말이야. 모든 것!”

내 말을 이해할 수 있겠어? 이런 일을 겪어본 적이 있나? 하루 종일 열심히 일했단 말이야. 기진맥진, 녹초가 되었어. 그래서 잠시 일을 쉬기로 한 거지. 나무 아래나 바위나 어떤 물체에 기대 축 늘어져 멍한 채로 그렇게 앉아 있는 거야. 그 시간이 삼십 분인지 백만 년인지는 몰라. 하여간 그 시간 내내 눈을 뜨고 정면 어딘가를 보고 있기는 한데 눈이 너무 피곤하고 흐릿해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 아무 것도. 죽은 사람 비슷한 상태야. 그러다 조금씩 몸이 회복되기 시작하고, 눈도 제대로 보인다 싶다가 갑자기 깨닫게 되는 거야. 그동안 줄곧 뭔가를 보고 있었고 이제야 그것이 눈에 들어온다는 사실을. 그것은 바위 아래에 다리가 낀 새끼 암양일 수도 있고, 구름을 뚫고 얼굴을 드러낸 달일 수도 있을 거야. 그것은 줄곧 거기 있었고 나도 줄곧 그것을 보고 있었지만, 그때까지는 눈에 들어오지 않았던 거야.”

어쨌거나 그날 밤이 그랬어. 마침내 정신을 차린 것 같다고 할까. 전에는 거기에 없다가 난데없이 나타난 것이 아니라, 거기 늘 있던 것들이 초점이 맞춰지며 분명하게 보이는 것 같았어. 대단한 광경이었지! 허공은 더 이상 그냥 비어 있지 않았어. 살아 있었어. 환한 빛이 사방에 있었고 새 떼처럼 오르락내리락했어. 고요라고 생각했던 것이 더 이상 고요하지 않았고 수많은 날개들의 날갯짓 소리로 바뀌었어. 날갯짓 소리만이 아니었어. 점점 더 감각이 또렷해지면서 목소리들도 들려왔어. 나팔소리처럼 높고 거침없는 소리였지. 어떤 말이었는지 나중에 도무지 기억나지 않았지만 아마 내가 입에 한가득 빵을 넣고 소리쳤던 것과 비슷한 말이었을 거야. ‘하나님 맙소사, 너무 좋다, 형제들아! 빵 껍질, 진흙, 전부. 전부 다!’”

그래, 그래. 우리가 정신이 나갔던 거라고 생각한다면, 물론 그 생각이 옳아. 그런데 있잖아, 그건 감옥에 갇혀 있다 나오는 것과 비슷했어. 그때 같이 있던 친구들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해. 발이 아프다고 늘 투덜대던 사팔뜨기. 로마인보다 욕을 잘하는 땅꼬마. 소녀처럼 얼굴을 붉히던 젊은 친구. 우리 모두 진흙탕 들판을 부리나케 달려갔어. 꼭 축제 때 술 취한 사람들처럼 말이야. 그런데 우리는 취한 건 맞았어. 지독히 취한 채 날개들의 바다와 달빛과 양들의 은빛 털을 헤치면서 갔어. 그때가 밤이었나? 낮이었나? 우리 발이 땅에 닿기는 했나?”

“‘, , 당신들 때문에 손님들 다 깨겠어.’ 양팔에 장작을 잔뜩 들고 반대쪽에서 오던 여관 주인이 우리를 보고서 그러더군. 우리가 여관 뒤쪽의 헛간으로 갔더니 거 있던 세 명의 외국인 중 하나가 입술에 손가락을 갖다 댔어.”

있잖아, 폭풍의 눈에는 바람이 불지 않아. 아무것도 움직이지 않지. 아무것도 숨을 쉬지 않아. 침묵도 입을 다문다고. 그러니 이제 조용히 해. 조용. 저기 그분이 계시는군. 그분이 보이나? 그분이 보여? 전능하신 하나님 맙소사, 형제들아. 눈을 뜨게나. 귀를 기울여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