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탄_크리스마스 메시지)프레드릭 비크너 설교04_공중의 얼굴(누가복음 2:8-12)
공중의 얼굴_프레드릭 비크너
누가복음 2:8-12
그 지역에 목자들이 밤에 밖에서 자기 양 떼를 지키더니 주의 사자가 곁에 서고 주의 영광이 그들을 두루 비추매 크게 무서워하는지라. 천사가 이르되 무서워하지 말라.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오늘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너희가 가서 강보에 싸여 구유에 뉘어 있는 아기를 보리니 이것이 너희에게 표적이니라 하더니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어떤 면에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으로 인해 그분에 대해서 더 이상 확신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분을 마구간에서 보았으니, 앞으로 그분이 인류를 거침없이 추적해 어디에 나타나시고 어떤 일까지 해내시며 터무니없이 자기를 낮추시는 자기비하를 얼마나 감수하실지 결코 확신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거룩함과 엄청난 능력과 위엄이 전혀 상서롭지 못한 이 사건, 농민의 아이가 태어난 현장에 함께했다면, 거룩함이 자리하지 못한 만큼 천박하고 세속적인 장소나 시간은 없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결코 안전하지 않다는 뜻이고 하나님을 피해 숨을 곳은 없다는 뜻이며, 인간의 마음을 둘로 쪼개고 재창조하는 그분의 능력이 미치지 못한 곳 역시 없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가장 무력해 보이는 곳에서 가장 강하시고, 우리가 전혀 예상치 못하는 곳에 가장 온전하게 임하시기 때문입니다.
이 탄생은 또한 하나님도 그분을 믿는 우리로부터 결코 안전하시지 않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어쩌면 그것이 성탄절의 어두운 면, 침묵의 공포일 것입니다. 하나님은 늘 우리가 거절할 수 있는 방식으로 찾아오십니다. 우리는 그 아기의 두개골을 계란껍질처럼 깨뜨릴 수 있고, 그러기에 너무 커버렸다면 나무에 못 박을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은 여러 모습으로 우리를 찾아오십니다. 굳이 우리가 먹이지 않아도 되는 배고픈 사람들, 굳이 우리가 위로하지 않아도 되는 외로운 사람들, 우리가 언제든 자유롭게 등을 돌릴 수 있는 사람들의 절박한 필요의 모습으로 찾아오십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처분에 자신을 맡기신다는 말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무분별한 냉정함과 잔인함으로 하나님께 고통을 가할 수 있다는 의미이자 우리가 고통을 당하는 것만으로도 하나님을 고통스럽게 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사랑은 원래 그런 것입니다. 그래서 사랑하는 사람이 고통을 겪으면 우리도 그와 함께 고통을 겪고 그것을 피하려 하지 않습니다. 고통과 사랑은 하나니까요.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도 그와 같습니다.
그날 밤 아이가 태어났습니다. 어머니의 몸은 녹초가 되었고, 아버지는 주먹 쥐듯 입을 꽉 다물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이후 모든 것이 달라졌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이들에게 모든 것이 달라졌고 하나님을 믿지 않는 이들에게도 모든 것이 달라졌습니다. 그 탄생이 이루어진 이상, 이제 그들은 하나님만 거부하면 되는 것이 아니라 그 사건도 거부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도 이제 막 태어난 아기 앞에 서면 침묵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침묵 속에는 눈물만 있을 뿐입니다. 그들이 볼 때는 모든 아이가 그렇듯 이 아이도 그저 죽기 위해 태어난 또 하나의 생명일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가 아무리 용감하게 잘 산다고 해도 그의 인생에는 그가 스스로 부여하는 의미 이상의 의미가 있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모든 인생이 그렇듯 그의 인생도 지나고 나면 꿈처럼 허망할 것이 분명합니다. 믿지 않는 자들에게는 그 탄생에 담긴 온갖 시, 즉 천사들과 별과 밤중에 찾아와 선물을 바치는 세 명의 동방박사가 그 아름다움에도 불구하고 모래에 쓴 글자들과 같을 뿐입니다. 자기 자신 너머, 시간과 변화의 힘에 영향을 받지 않는 실재의 핵심을 가리키는 시가 아닌 것입니다.
그러면 믿으면서도 믿지 않는 사람들, 믿을 수 없는 사람들은 어떨까요? 어떤 사람들은 늘 믿지 못하고, 누구나 때로는 믿음이 사라지기도 합니다. 두 팔을 벌린 조각상이 공중에 떠서 표정 없는 얼굴로 아래를 내려다보자 사람들을 그 얼굴을 알아보고 이름을 부릅니다. 그들은 손을 흔들고 고르지 못한 땅을 달려 어느 정도 따라갑니다. 밤은 깊어지고 고요해져서 들리는 소리라곤 아이가 태어나 우는 소리뿐입니다. 새 생명이 세상에 나오는 작은 고통을 알리는 소리이지요. 어쩌면 기쁨에 겨워 터져 나오는, 보이지 않는 수많은 목소리가 있을지도 모릅니다.
믿는 불신자들에게도 모든 것이 달라지기는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그 고요한 순간에 그들이 보고 들은 것이 어쩌면, 어쩌면 세상의 소망일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의 이름을 부르기만 한다면 큰 확신도 없이 한 손만 살짝 흔든 것이라도 괜찮습니다. 그들이 손을 흔들 때 마음속으로 느끼는 것은 그분이 태어나듯 나올 준비를 하는 새 생명, 새 용기, 새 기쁨의 태동입니다. 그들도, 우리도, 넓은 세상도 그 두 팔을 향해 두 팔을 뻗고 공허한 얼굴을 들어 당혹감을 주는 그 얼굴을 바라보기만 한다면 그것으로 족할 것입니다.
(능력은 당신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당신이 바라보는 바로 그곳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