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원작동화리딩)죽음으로 끝나는 피노키오 진짜 이야기
Pinocchio
THE ADVENTURES OF PINOCCHIO
by C. Collodi (Pseudonym of Carlo Lorenzini)
Translated from the Italian by Carol Della Chiesa
처음에 콜로디는 피노키오를 동화로 계획한 것이 아니었으며 불행한 결말로 끝날 예정이었다. 따라서 피노키오는 15회에서 나무에 목이 매달려 비참하게 죽었으나, 편집자의 요청으로 16회부터 36까지 나머지 부분을 완성하게 된다(위키백과)
1. 목수인 체리 할아버지가 어린아이처럼 울고 웃는 나무토막을 만나게 된 이야기
옛날 옛적에 나무토막이 하나 있었다. 어느 날 나무토막 하나가 늙은 목수의 가게에 오게 되었다. 목수의 이름은 안토니오였는데, 잘 익은 체리처럼 반질반질하고 새빨간 코 때문에 사람들은 그를 체리 할아버지라고 불렀다. 체리 할아버지는 나무껍질을 벗겨 다듬으려고 도끼를 들고 내리치려는 순간, 들릴락 말락 가느다랗게 애원하는 말소리가 들렸다. "제발 너무 세게 때리진 마세요!" 착한 체리 할아버지는 얼마나 놀랐는지 모른다. 소리가 도대체 어디에서 들려 왔는지 멍한 눈으로 가게 안을 둘러보았지만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틀림없이 잘못 들은 게야! 일이나 계속하자." 체리 할아버지는 다시 도끼를 집어 들고는 능숙한 솜씨로 곁가지를 내리찍었다. "아야! 아프잖아요!"체리 할아버지는 화들짝 놀라고 말았다. 너무 무서워서 눈이 툭 튀어나오고 쩍 벌어진 입으로는 혀가 턱까지 쑥 빠져 나왔다. 체리 할아버지는 두 손으로 나무토막을 집어 들고는 인정사정없이 벽에 내팽개쳤다. 그런 다음 또다시 그 자그마하게 투덜거리는 소리가 들리는지 귀를 기울였다. 그러나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체리 할아버지는 손으로 가발을 감싸 쥐고 억지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이제 알겠다. 그래, 아까 그 소리는 헛들은 게 틀림없어!" 하지만 무서운 생각이 밀려와서 체리 할아버지는 애써 용기를 내려고 노래를 흥얼거리기 시작했다. 할아버지는 나무토막을 다듬으려고 대패를 아래위로 밀자 또다시 그 목소리가 들려 왔다. 이번에는 키득키득 웃는 소리였다. 불쌍한 체리 할아버지는 벼락 맞은 사람처럼 벌렁 나자빠지고 말았다. 새빨갛던 코는 겁에 질려 파랗게 변해 있었고, 얼굴은 전혀 다른 사람 같았다.
2. 체리 할아버지는 친구인 주세페 제페토 할아버지에게 나무토막을 준다. 제페토 할아버지는 춤추고, 칼싸움도 하고, 공중제비도 돌 줄 아는 멋진 꼭두각시를 만들려고 나무토막을 가져간다.
그때 누군가 문을 두드렸다. 체리할아버지는 몸을 일으켜 세울 힘도 없어 앉은 채로 겨우 말했다. "들어와요." 활발해 보이는 노인 한 사람이 가게 안으로 들어왔다. 제페토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이었다. 하지만 제페토 할아버지의 가발이 옥수수로 만든 콘 수프와 너무나 비슷한 색깔이었기 때문에, 동네 아이들은 제페토 할아버지를 '콘 수프'라고 놀려 대곤 했다. 제페토 할아버지는 변덕쟁이에다 성질이 불같아서 그 앞에서 콘 수프라고 불렀다간 난리가 난다. "여긴 어떻게 온 건가. 제페토?" "어떻게 오긴. 걸어서 왔지. 사실은 부탁이 하나 있어서 왔는데, 나무로 꼭두각시를 만들어야겠어. 춤도 추고. 칼싸움도하고, 공중제비도 돌 줄 아는 아주 멋진 꼭두각시 말이야."
"훌륭해요, 콘 수프!" 아까 그 가느다란 목소리였다. 어디서 들려오는지 알 수는 없었지만 틀림없이 아까 그 목소리였다. 콘 수프라는 말에 제페토 할아버지는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왜 사람을 놀리고 그래?" "놀리긴 누가 놀려?" "방금 나더러 콘 수프라고 그랬잖아!" "난 안 그랬어." 목소리가 점점 커지더니 그만 말싸움이 몸싸움이 되고 말았다. 한바탕 싸움을 벌이고 나자 체리 할아버지 손에는 제페토 할아버지의 노란 가발이 들려 있었고. 제페토 할아버지의 입에는 흰 머리가 섞인 체리 할아버지의 가발이 물려 있었다. 체리 할아버지가 말했다. "내 가발 줘!" "자네도 내 가발 줘. 그리고 화해하세!" 각자 상대방의 가발을 넘겨주고 악수를 나눴다. 그러고는 죽는 날까지 좋은 친구가 되자고 맹세했다. 평화를 되찾자 체리 할아버지가 말했다. "제페토, 나한테 부탁하려던 게 뭔가?" "인형을 만드는 데 필요한 나무를 좀 얻을까 하는데, 줄 거지?" 체리 할아버지는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탁자 쪽으로 가서 나무토막을 집어 들었다. 자신을 잔뜩 겁먹게 만들었던 그 나무토막이었다.
그런데 나무토막을 막 건네주려는 순간, 나무토막이 부르르 떨더니 체리 할아버지의 손에서 빠져 나가 버렸다. 그러더니 제페토 할아버지의 깡마른 정강이를 세차게 후려치는 것이 아닌가? "아야! 안토니오. 꼭 이런 식으로 선물을 줘야 속이 시원한가? 자네 덕분에 절름발이가 될 뻔했잖아!" "맹세코 내가 그런 게 아니야!" "그럼 내가 그랬단 말이군!" "모두 이 나무 토막 때문이야." "그거야 나도 알지. 하지만 자네가 이걸 나한테 던졌잖아!" "내가 던진 게 아니라니까!" "거짓말쟁이!" "제페토, 사람 약 올리면 못써. 계속 그러면 콘 수프라고 부를 거야!" "멍청이!" "콘 수프!"
세 번째로 콘 수프라는 말을 듣자, 제페토 할아버지는 체리 할아버지에게 덤벼들어 또다시 주먹다짐을 하고 말았다. 싸움은 또다시 무승부로 끝나고, 두 사람은 다시 악수를 나누고는 죽는 날까지 좋은 친구가 되자고 맹세했다. 평화를 되찾자 제페토 할아버지는 그 똑똑한 나무토막을 집어 들고는 체리 할아버지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했다. 그러고 나서 다리를 절룩거리며 집으로 돌아왔다.
3. 제페토 할아버지는 집에 돌아오자마자 꼭두각시를 만들고 피노키오라는 이름을 지어준다. 꼭두각시는 말썽을 일으키기 시작한다.
(제페토 할아버지는 피노키오의 입을 만든 다음에 턱을 만들고, 그 다음엔 목을, 그 다음엔 어깨, 배, 팔, 손을 차례로 만들었다. 손 만드는 걸 막 끝냈을 때였다.)
누군가 제페토 할아버지의 가발을 벗기는 것 같았다 고개를 들자, 맙소사! 할아버지의 노란 가발이 꼭두각시의 손에 들려 대롱거리고 있었다! "피노키오, 당장 내 가발 내놔!" 피노키오는 가발을 돌려주기는커녕 자기 머리에 뒤집어썼다. 피노키오는 얼굴이 반쯤 가발에 파묻혀 버렸다. 피노키오가 버릇없이 놀려 대자 제페토 할아버지는 속이 상했다. 지금껏 살아오면서 그렇게 슬프고 서러웠던 적은 없는 것 같았다. 발을 다 만들자마자 꼭두각시가 제페토 할아버지의 콧잔등에 발길질을 했다. 하지만 제페토 할아버지는 체념한 듯 혼자말로 중얼거렸다. "다 내 잘못이야. 꼭두각시를 만들기 전에 좀 더 신중히 생각했어야 했는데. 이젠 너무 늦어 버렸어!" 제페토 할아버지는 걸음마를 시키려고 인형을 안아서 바닥에 내려놓았다. 피노키오는 잠시 혼자 걷는가 싶더니, 어느 새 방 안을 뛰어다니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열린 문틈으로 뛰어나가 어디론가 달아나 버렸다. 제페토 할아버지도 뒤따라 뛰기 시작했다. 하지만 산토끼처럼 껑충껑충 달아나는 개구쟁이 피노키오를 도저히 따라잡을 수가 없었다.
나무로 만든 발이 포장된 도로 위를 달려가자 마치 스무 명이 나막신을 신고 달려가는 것처럼 소리가 요란했다. "저 녀석 잡아라! 저 녀석 잡아!" 제페토 할아버지가 고함을 질렀지만 거리에 있던 사람들은 경주마처럼 달리는 나무 인형을 넋 놓고 바라보며 깔깔거리며 웃어 대기만 했다.
그때 경찰은 요란한 소리가 들리자 일하기 싫어서 고집을 피우는 노새가 달아난 게 틀림없다고 생각하고 팔다리를 벌린 채 길을 막아섰다. 그래서 피노키오는 경찰관의 다리 사이로 빠져 나가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우뚝 선 경찰관이 우뚝 선 피노키오의 코를 낚아챘다. 피노키오의 코는 너무나 커서 마치 손으로 움켜잡으라고 일부러 만들어 놓은 손잡이 같았다. 경찰관이 피노키오를 제페토 할아버지에게 넘겨주자, 할아버지는 버릇을 고쳐 주려고 피노키오의 귀를 잡아당기려고 했다. 순간 제페토 할아버지는 깜짝 놀랐다. 피노키오의 귀가 없었기 때문이다. 서둘러 만드느라 귀를 만들어 주는 것을 깜박 잊은 것이다. 그래서 제페토 할아버지는 피노키오의 목덜미를 움켜잡고는 머리를 마구 흔들며 집에 가서 혼꾸멍을 내주겠다고 했다. 이렇게 겁을 주자 피노키오는 땅바닥에 벌렁 드러눕더니 한 발짝도 못 걷겠다며 고집을 피우기 시작했고 눈 깜짝할 사이에 호기심 많은 할 일 없는 사람들이 주위로 모여들었다. 지나가던 사람들이 저마다 한마디씩 했다. "불쌍한 꼭두각시! 집에 돌아가기 싫은 게 당연하지! 저 영감이 도대체 얼마나 두들겨 팰지 누가 알겠어!" 그러자 다른 사람도 거들었다. "사람 좋아 보이는 제페토 영감이 아이들한테는 폭군이라니까! 불쌍한 나무 인형을 저 사람 손에 맡겼다간 박살 날거야." 사람들이 얼마나 말도 많고 참견도 많았는지. 경찰은 피노키오를 놓아 주고 대신 불쌍한 제페토 할아버지를 감옥으로 끌고 갔다. 제페토 할아버지는 아무 말도 못하고 눈물만 흘렸다. 할아버지는 감옥으로 끌려가면서 울먹울먹하며 중얼거렸다. "몹쓸 녀석 같으니라고! 내가 훌륭한 꼭두각시를 만들려고 얼마나 애를 썼는데! 이런 일을 미리 생각하지 못한 내 잘못이지. 모든 게 내 책임이야."
4. 피노키오와 말하는 귀뚜라미 이야기. 아이들이 자기들보다 아는 것이 많다고 잔소리하는 어른들을 얼마나 싫어하는지 보여준다.
불쌍한 제페토 할아버지는 아무 잘못도 없이 감옥에 끌려갔다. 한편 경찰관의 손에서 벗어난 피노키오는 신나게 달려갔다. 집에 도착한 피노키오는 빗장을 걸고는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러고는 안도의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하지만 갑자기 방 안에서 들려 온 소리 때문에 행복한 마음은 그리 오래 가지 않았다. 잔뜩 겁먹은 목소리로 피노키오는 벽을 타고 천천히 올라가고 있는 귀뚜라미에게 물었다. "넌 누구니?" "말하는 귀뚜라미. 이 방에서 산 지 백 년도 넘었지." 그러자 꼭두각시 피노키오가 대뜸 이렇게 말했다. "하지만 오늘부터 이 방은 내 거야. 그러니 날 기쁘게 해 주고 싶다면 당장 꺼져. 뒤도 돌아보지 말고!" "알았어. 떠나지. 하지만 그 전에 아주 중요한 사실을 하나 말해 줘야겠어." "말해 봐. 그리고 빨리 꺼져!" "부모님 말씀 안 듣는 아이들은 벌을 받게 된다고! 언젠가는 가슴 아프게 후회하게 될 거야." "오, 귀뚜라미 씨. 계속 떠들어 봐. 난 내일 새벽에 여길 떠날 테니까, 이대로 여기 있다간 다른 아이들이랑 똑같은 신세가 될 거야. 학교도 가야하고. 공부도 해야 하고. 솔직히 난 공부는 죽어도 하기 싫어. 노는 게 젤 좋아." "불쌍한 녀석! 그랬다간 이다음에 커서 멍청한 사람이 된다는 걸 모르니? 사람들의 놀림감이 되고 말걸!" "닥쳐 재수 없는 귀뚜라미!" 피노키오가 소리쳤다. 참을성 많고 생각이 깊은 귀뚜라미는 피노키오의 버릇없는 행동에 기분 나빠하지 않고 한결같은 목소리로 말했다. "학교 가기 싫으면 일이라도 배우지 그러니? 그래야 정직하게 빵 한 조각이라도 벌 수 있지 않겠니?" 피노키오는 점점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세상 모든 일 중에서 정말 내 마음에 드는 게 딱 하나 있어. 말해 줄까?" "그게 뭔데?" "먹고 마시고 잠자고 즐기는 거. 그리고 아침부터 저녁까지 노는 거." 말하는 귀뚜라미는 여전히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렇게 살다간 병원이나 감옥신세를 지게 될 거야." "꺼져 열라 짜증나! 자꾸 화나게 하면 넌 끝장이야!" "불쌍한 피노키오! 정말 가엾기 짝이 없구나!" "가엾다니, 어째서?" "넌 꼭두각시니까. 게다가 네 머리는 나무로 만들어졌잖아." 귀뚜라미의 마지막 말에 피노키오는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았다. 곧바로 탁자에서 나무망치를 집어 들더니 말하는 귀뚜라미를 향해 냅다 던졌다. 피노키오는 귀뚜라미가 정말로 나무망치에 맞을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는지 모른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망치는 헤드샷, 귀뚜라미는 숨을 몰아쉬며 귀뚤! 외마디 소리를 내더니 그만 벽에 달라붙어 죽고 말았다.
5. 피노키오는 배가 고파서 달걀을 찾아 프라이팬에 부친다. 막 먹으려는 순간, 달걀 프라이가 창문 밖으로 날아가 버린다.
어느 새 밤이 다가왔다. 피노키오는 아직 아무것도 먹지 않았다는 것이 생각났다. 아이들은 먹고 싶다는 생각을 하면 금세 배가 고파지는 법이다. 불쌍한 피노키오는 얼른 벽난로 쪽으로 달려갔다. 뭔가 보글보글 끓고 있는 냄비를 본 것이다. 뭐가 들어 있는지 뚜껑을 열어 보려고 했지만 그건 벽에 그려진 그림이었다. 얼마나 실망스러웠던지 그렇잖아도 기다란 피노키오의 코가 손가락 네 개만큼이나 더 길어지고 말았다.
6. 피노키오는 화로 위에 발을 올려놓고 잠이 든다. 다음날 아침, 발이 모조리 불에 타 버린 것을 알게 된다.
(피노키오는 몹시 추운 겨울밤에 집을 나와 어느 집 초인종을 눌렀다. 먹을 것을 달라고 하자 어느 노인이 화가 나서 창밖으로 물벼락을 내렸다.)
물벼락을 맞은 피노키오는 물에 빠진 생쥐 꼴로 집으로 돌아왔다. 피곤하고 배가고파 더 이상 서 있을 힘도 없었다. 피노키오는 의자에 주저앉아 진흙이 묻은 축축한 발을 뻘건 숯불이 담긴 화로에 걸쳤다. 그러다 그대로 잠이 들고 말았다. 나무 발은 조금씩 검은 숯으로 바뀌더니 재로 변해 버렸다. 그런데 피노키오는 코까지 골며 곯아떨어졌고, 날이 밝아 올 무렵에야 누군가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잠에서 깨어났다. 제페토 할아버지였다!
7. 집으로 돌아온 제페토 할아버지는 자신이 먹으려고 가져온 음식을 피노키오에게 준다.
잠이 덜 깬 피노키오는 자기 발이 모조리 타 버렸다는 것을 아직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그래서 문을 열어야겠다는 생각에 의자에서 껑충 뛰어내렸다. 결국 쿵 하고 바닥에 길게 뻗어 버리고 말았다. 바닥에 넘어질 때 얼마나 요란한 소리가 났는지 마치 나무 국자가 가득 들어 있는 자루가 육 층에서 떨어질 때 나는 소리 같았다. 피노키오가 바닥을 구르며 우는 소리로 대답했다. "아빠, 문을 열 수가 없어요!" "왜 못 열어?" "누가 내 발을 다 먹어 버렸어요." "누가 네 발을 먹어?" "고양이가요." 앞발로 대팻밥을 날리며 장난치고 있는 고양이를 보고 피노키오가 이렇게 대답했다. 그러나 제페토 할아버지는 피노키오가 장난을 치는 게 틀림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혼을 내주어야겠다고 생각하며 창문을 넘어 안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발이 다 타 버린 피노키오가 정말로 바닥에 늘어져 있는 모습을 보는 순간, 마음이 약해지고 말았다. "아이고, 내 아들 피노키오! 어쩌다 이렇게 발이 다 타 버린거니?" "몰라요, 아빠. 정말 지옥처럼 끔찍한 밤이었어요. 죽을 때까지 잊지 못할 거예요, 천둥이 울리고 번개가 치고. 난 너무나 배가 고팠어요."
8. 제페토 할아버지는 피노키오의 다리를 만들어주고, 외투를 팔아서 책을 사준다.
피노키오는 아빠를 향해 말했다. "아빠를 위해 학교에 갈 거예요." "훌륭하구나!" "그렇지만 학교에 가려면 옷이 있어야 하잖아요." 너무나 가난해서 주머니에 돈 한 푼 없는 제페토 할아버지는 피노키오에게 꽃무늬 종이로 옷을 만들어 주었다. 그리고 나무껍질로 신발을 만들고, 빵으로 모자를 만들어 주었다. 피노키오는 얼른 달려가 대야에 가득 담긴 물에 자기 모습을 비추어 보고는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뽐내며 말했다. "멋진 신사 같아!" 제페토 할아버지도 맞장구를 쳐 주었다. "그렇고말고. 멋있는 옷보다는 깨끗한 옷을 입어야 신사가 될 수 있지. 잊지 말아라." "그런데 학교에 가려면 아직도 없는 게 있어요. 가장 중요한 거예요." "그게 뭔데?" "책이요." 돈이 없는 제페토 할아버지는 슬픈 표정을 지었다. 명랑한 피노키오도 슬픈 표정으로 바뀌고 말았다. 정말로 가난할 땐 누구나 다 가난을 몸으로 겪을 수밖에 없는 법이다. 아이들이라 할지라도.
제페토 할아버지는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나 누더기가 된 낡은 외투를 걸치고는 집 밖으로 달려 나갔다. 잠시 뒤 제페토 할아버지는 아들에게 줄 책을 들고 돌아왔다. 하지만 나갈 때 입고 있던 외투가 없었다. 밖에는 눈이 내리고 있는데 이 불쌍한 노인은 속옷차림이었다. "아빠, 외투는 어디 있어요?" "팔아 버렸지." "왜 팔았어요?" "너무 더워서." 피노키오는 그 말뜻을 알아듣고는 가슴이 뭉클해졌다. 그래서 아빠의 목을 끌어안고 얼굴에 입을 맞추었다.
9. 피노키오는 꼭두각시 인형극을 보려고 책을 팔아 버린다.
눈이 그치자 피노키오는 새 책을 팔에 끼고 학교로 갔다. 길을 가는 동안 피노키오의 머릿속에는 온갖 생각과 상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떠올랐다. 그래서 혼잣말을 했다. "오늘은 학교에서 책 읽는 걸 배울 거야. 내일은 쓰기를 배우고 모레는 셈하는 법을 배울 거야. 그런 다음 난 돈을 많이 벌어야지. 처음 번 돈으로 아빠한테 멋진 외투를 사 드려야지. 아니, 번쩍거리는 단추에 금이며 은으로 만든 외투를 사 드릴 거야. 불쌍한 우리 아빠는 그럴 자격이 있어. 아빠는 나한테 책을 사 주시느라고 지금 셔츠만 입고 계셔. 이 추운 날씨에 말이야! 나를 위해 이런 희생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아빠뿐이야." 피노키오가 감격해서 이렇게 말하고 있을 때, 어디선가 피리 부는 소리와 북 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걸음을 멈추고 가만히 들어 보니 비스듬히 뻗어 있는 길 끄트머리에서 들려오는 소리였다. 길은 바닷가에 있는 작은 마을로 이어져 있었다. 피노키오는 그 자리에 우뚝 선 채 어쩔 줄을 몰랐다. 결정을 내려야 하는 순간이었다. 학교에 갈까? 아니면 피리 소리를 들으러 갈까? 개구쟁이 나무인형은 마침내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오늘은 피리 소리를 들으러 가는 거야. 학교엔 언제든지 갈 수 있으니까." 피노키오는 비스듬히 뻗은 길로 들어서자마자 달리기 시작했다. 달리면 달릴수록 피리 소리와 북 소리가 더욱 뚜렷하게 들려왔다.
10. 꼭두각시들은 자기들의 형제인 피노키오를 알아보고 잔치를 벌인다. 하지만 한창 신날 때 극장주인 허풍선이가 나타나 피노키오는 비참한 최후를 맞이할 위험에 빠진다.
바로 그때 얼굴만 보아도 겁나게 생긴 극장 주인이 나왔다. 극장 주인은 검은색 잉크처럼 새카맣고 기다란 수염을 기르고 있었다. 수염이 얼마나 긴지 바닥까지 끌려서 걸을 때 수염이 자기 발에 밟힐 정도였다. 커다란 입은 아궁이 같았고, 두 눈은 빨간 호롱불 같았다. 손에는 뱀과 여우 꼬리를 꼬아서 만든 채찍을 들고 획획 소리를 내며 휘둘렀다. 생각지도 못한 극장 주인이 나타나자 모두 숨이 멎는 것 같았다. 갑자기 모기 소리도 들릴 만큼 조용해졌고, 나무 인형들은 사시나무 떨듯 벌벌 떨었다. 극장 주인은 감기 걸린 저승사자처럼 피노키오에게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너는 왜 우리 극장에 나타나서 이렇게 소란을 피우는 거냐?" 인형극이 끝나자 극장 주인은 부엌으로 갔다. 부엌에는 저녁식사로 준비한 양고기가 꼬챙이에 꿰여 불 위에서 빙빙 돌고 있었다. 양고기를 마저 익히는데 땔감이 모자라자 극장 주인은 아를레키노와 풀치넬라를 불렀다. "못에 걸어 둔 그 꼭두각시를 끌고 와. 고기 굽는 데 장작으로 쓰면 딱 좋겠어." 아를레키노와 풀치넬라는 망설였다. 하지만 주인이 눈을 부라리자 겁을 먹고 명령에 따를 수밖에 없었다. 둘은 불쌍한 피노키오의 양 팔을 잡고 돌아왔고, 피노키오는 물 밖에 나온 뱀장어처럼 몸부림치며 소리를 질렀다. "아빠, 살려 주세요! 난 죽고 싶지 않아요!"
11. 극장 주인 허풍선이는 재채기를 하더니 피노키오를 용서해준다. 피노키오는 친구 아를레키노의 목숨을 구해준다.
"살려 주세요. 폐하!" 폐하라는 말에 극장 주인은 입이 쩍 벌어지더니 금세 표정이 바뀌었다. 그리고 다정하게 말했다. "그래. 내게 바라는 게 무엇인고?" "불쌍한 아를레키노에게 부디 자비를 베풀어 주세요!" "자비 따위는 없어. 내가 너를 살려 주었으니 대신 저놈을 불에 던져야 돼. 내 양고기를 구워야 한단 말이다." 피노키오는 벌떡 일어서더니 빵으로 만든 모자를 벗어 던지며 말했다. "그렇다면, 자 호위병들! 나를 묶으세요. 그리고 불에 던지세요! 내 진짜 친구인 아를레키노가 나를 위해 죽는 건 옳지 않아요!" 영웅 같은 목소리로 크게 외친 이 말에 꼭두각시들은 모두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나무로 만든 호위병들조차 젖먹이 새끼양처럼 울었다. 허풍선이는 처음엔 얼음 조각처럼 냉정하게 꼼짝도 하지 않았지만 곧 다정하게 두 팔을 벌리고 피노키오에게 말했다. "너는 정말 착한 아이로구나! 어서 이리 와서 내게 입맞춰다오." 피노키오는 곧바로 달려가 다람쥐처럼 극장 주인의 수염을 타고 올라갔다. 그리고 콧잔등에 조옥 입을 맞추어 주었다.
12. 극장주인 허풍선이가 아빠에게 갖다 주라며 피노키오에게 금화 다섯 닢을 준다. 하지만 피노키오는 꾐에 빠져 여우와 고양이를 따라간다.
피노키오가 소리를 질렀다. "웃을 일이 아냐. 군침 흘리게 해서 미안하지만, 여기 이건 자그마치 금화 다섯 닢이야. 알겠니?" 피노키오는 허풍선이한테 받은 금화를 꺼냈다. 금화 부딪치는 기분 좋은 소리에 여우는 자기도 모르게 절름발이 흉내를 내던 다리를 쭉 폈고. 장님 흉내를 내던 고양이는 두 눈을 번쩍 떴다. 하지만 재빨리 다시 눈을 감았기 때문에 피노키오는 아무것도 알아채지 못했다. 여우가 먼저 입을 열었다. "금화로 뭐할꺼야?" "가장 먼저 우리 아빠한테 멋진 옷을 사 드릴 거야. 금이며 은으로 만든 옷에 번쩍거리는 단추가 달린 걸로. 그리고 새 책도 사야지." "책이라고?" "그래. 난 학교에 가서 열심히 공부하고 싶어." 그러자 여우가 말했다. "날 좀 봐. 공부를 하다가 다리를 하나 잃었어." 고양이도 거들었다. "날 좀 봐. 공부를 하다가 두 눈의 시력을 잃었지." 바로 그때 길가 울타리에 둥지를 튼 찌르레기(Blackbird)의 노랫소리가 들려왔다. "피노키오. 나쁜 친구들의 말을 듣지 마. 그랬다간 언젠가 가슴 아픈 후회를 하게 될 거야!"
(여우가 피노키오에게 말했다) "네가 가진 금화 다섯 개가 단 하루 사이에 이천 개가 될 수 도 있는데!" 이번에도 고양이가 따라 말했다. "될 수도 있는데!" 피노키오가 놀라서 입을 쩍 벌어졌다. "어떻게?" 여우가 대답했다. "얼간이 나라에 '축복받은 밭'이 있어 ‘기적의 땅’이라고도 불리지. 그 밭에 구덩이를 파고 금화 한 닢을 넣는 거야. 그 다음엔 흙을 덮고 샘물 두 양동이를 주는 거지. 그리고 소금 한 움큼을 뿌린 다음 잠을 자. 그러면 밤새 싹이 나서 꽃이 피게 되거든. 다음 날 아침 일어나서 밭에 가 보면 밤새 자란 나무에 금화가 주렁주렁 달려 있을 거야. 유월이 되면 잘 익은 밀 이삭에 수많은 밀알이 주렁주렁 달리듯이 말이야." 피노키오는 더욱더 놀란 표정으로 다시 물었다. "그럼 금화 다섯 닢을 다 묻으면 다음 날 아침 모두 몇 개가 되는 거지?" 여우가 대답했다. "계산은 아주 간단해. 금화 한 닢이 금화 오백 개가 달린 금화송이로 바뀐다고 쳐 봐. 오백 곱하기 오를 하면, 다음 날 아침에 금화 이천오백 개가 생기게 되는 거야." 피노키오는 기뻐서 춤을 추며 외쳤다. "와, 신난다! 그러면 난 이천 개만 갖고 나머지 오백 개는 너희 둘한테 선물로 줄게."
13. 빨간 가재 여관. 피노키오는 기적의 땅으로 가기 위해 여우와 고양이와 더불어 걷고 또 걸었다. 저녁 무렵 지칠대로 지쳤을 때 빨간 가재 여관에 도착했다.
한참 길을 가다 보니 나뭇등걸 위에 희미하고 어슴푸레한 빛을 내는 조그만 동물이 보였다. 마치 흐릿한 등잔불 같았다. 피노키오가 물었다. "넌 누구니?" "말하는 귀뚜라미 혼령이야." 조그만 동물은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마치 저 세상에서 들려오는 소리 같았다. "너한테 충고를 해 주고 싶어. 어서 집으로 돌아가 그리고 아직 남아 있는 금화 네 개를 불쌍한 아빠에게 갖다 드려. 너희 아빠는 네가 돌아오지 않아서 울며 지내고 계시니까." "걱정 마. 내일이면 우리 아빠는 큰 부자가 될 거야. 금화 네 개가 이천 개가 될 테니까." "하루아침에 부자로 만들어 주겠다는 사람들을 믿으면 안 돼. 그런 사람들은 틀림없이 미친 사람 아니면 사기꾼이거든. 제발 내 말 듣고 집으로 돌아가!" "싫어, 난 계속 갈 거야." "잊지 마. 자기 멋대로 하는 아이는 언젠가는 후회하게 돼." "또 그 소리! 잘 가. 귀뚜라미 씨!"
14. 피노키오는 말하는 귀뚜라미의 충고를 듣지 않아서 강도를 만나게 된다.
피노키오는 다시 길을 떠나며 중얼거렸다. "어린아이들은 정말 불쌍해. 보는 사람마다 꾸짖고 겁주고 가르치려고 하잖아. 그냥 두면 모두들 아빠나 선생님이 되려고 할 걸. 말하는 귀뚜라미까지 그러잖아! 내가 그 귀찮은 귀뚜라미의 말을 듣지 않은 건 다 그것 때문이야. 귀뚜라미 말대로라면 도대체 얼마나 많은 일이 벌어질지 어떻게 알겠어. 강도까지 만나게 될 거라고 하잖아! 난 강도가 있다는 말을 믿지 않아. 전에도 그랬지만 밤에 밖에 나가고 싶어 하는 아이들에게 겁을 주려고 아빠들이 지어낸 말일 뿐이야. 혹시 강도를 만난다고 해도 난 겁나지 않아. 난 강도들한테 이렇게 말하겠어. ‘강도나리, 뭘 바라시나요? 나한테 함부로 장난치면 안 된다는 걸 알아두세요! 조용히 물러나서 볼일이나 보시라고요!’ 그럼 불쌍한 강도들은 바람처럼 사라지겠지. 뻔해. 정말 나쁜 강도가 나타나면 내가 도망가면 돼"
그때 두 강도가 겁을 주며 고함을 쳤다. "자, 자, 헛소리 집어치우고 당장 돈 내놔!" 하지만 피노키오는 '난 아무것도 없어요.' 하고 말하는 것처럼 머리를 흔들고 손짓을 했다. 키가 큰 강도가 말했다. "돈을 내놓지 않으면 넌 죽어!" 키가 작은 강도가 말했다. "넌 죽어!" "널 죽인 다음에 너희 아빠도 죽일 거야." "안 돼, 안 돼. 우리 아빤 안 돼!" 피노키오가 큰 소리로 말하는 바람에 입 안에서 금화 부딪히는 소리가 나고 말았다. "아하, 요 나쁜 녀석 같으니라고! 돈을 혀 밑에 감추었구나. 어서 뱉어!" 그러더니 두 강도 가운데 하나가 피노키오의 코를 잡고, 다른 한 명은 턱을 붙잡았다. 그러고는 한 사람은 이쪽으로. 다른 한 사람은 저쪽으로 입을 열려고 잡아당기기 시작했다. 하지만 어림도 없었다. 피노키오의 입은 못질을 한 듯, 땜질을 한 듯 꼼짝도 하지 않았다.
(강도들은 도망가는 피노키오를 계속해서 쫓아오고 있었다)
15. 피노키오는 뒤쫓아 온 강도들에게 붙잡히고 만다. 강도들은 커다란 떡갈나무 가지에 피노키오를 매단다.
피노키오는 지칠 대로 지쳐서 땅바닥에 벌렁 드러누워 항복하고 싶었다. 그런데 그때 멀리 초록색 나무들 사이로 눈처럼 하얀 집이 반짝이는 게 보였다. ‘저기 저 집까지 뛰어갈 수만 있다면 살 수 있을지도 몰라.’ 거의 두 시간이나 정신없이 뛰어서 마침내 숨을 헐떡이며 조그만 집 문 앞에 도착했다. 피노키오는 문을 두드렸다. 아무 대답이 없었다. 피노키오는 뒤에서 달려오는 발소리와 거친 숨소리가 더욱 가까워진 것을 느끼며 더 세게 문을 두드렸다. 안에서는 여전히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아무리 문을 두드려도 소용이 없다는 걸 깨닫자 피노키오는 미친 듯이 발로 문을 차고 머리로 받았다. 그러자 마침내 예쁘게 생긴 소녀가 창문으로 얼굴을 내밀었다. 머리는 짙은 파란색이고 얼굴이 양초처럼 하얀 소녀였다. 소녀는 눈을 감고 손을 가슴에 포갠 채 입술도 움직이지 않고 말했다. 마치 저 세상에서 들려오는 목소리 같았다. "이 집엔 아무도 없어요. 모두 다 죽었어요." 피노키오는 울먹이며 애원했다. "그럼 당신이 문을 열어 주면 되잖아요!" "나도 죽었어요." "죽었다고요? 그럼 어떻게 창문으로 얼굴을 내밀 수 있죠?" "나를 담을 관이 올 때까지 기다리고 있는 거예요." 말을 마치자마자 소녀는 사라졌고 창문은 소리 없이 닫혔다. 그 때 누군가 피노키오의 목덜미를 움켜쥐었다. 피노키오는 죽음이 눈앞에 다가왔다는 것을 깨닫고는 바들바들 떨기 시작했다. 얼마나 떨었는지 나무다리를 이어 놓은 부분이 덜거덕거리고 혀 밑에 둔 금화가 짤랑거렸다. 결국 피노키오는 떡갈나무에 목이 매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