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꿀리뷰

IGR 제8화 이야기란 무엇인가(1) 이야기심리치료 북리딩

Gaegool 2019. 6. 2. 05:03

#개꿀리뷰 8화(북리딩) 분석심리학에 기초한 이야기심리치료 Storivewer 박종수 저, 2005. 학지사. 스토리텔러, 크리에이터, 유튜버, 명스피치 이야기를 위한 이야기 리딩, 개굴개굴 개꿀리뷰 Gaegool ps. 오타 8:35 '지식'이라 쓰고 '주인', 10:45 '아미무스'라 쓰고 '아니무스'로 리딩. 리딩한 것이 맞습니다. 오타가 발생하여 죄송합니다. #이야기 #이야기심리치료 #크리에이터 #Gaegool #개꿀리뷰

 

 

https://youtu.be/Uzby2_j0JFc

벼락처럼 번쩍이는 가장 도도한 자세로 한 아이가 선언하듯 말했지

"시작해요"

그 다음 아이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애원했지 "말도 안 되는 얘기여야 해요"

세 번째 아이가 이야기에 끼어들자 더 이상 잠시도 지체할 수 없게 되었어.

일순간, 정적이 흐르고, 근사한 이야기를 따라, 꿈꾸는 아이들은 땅을 가로질러

새로운, 놀라운 들판으로 갔지. 새들이나 동물같은 친근한 이야기

믿거나 말거나인 그런 이야기.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 서문 중에서

 

개굴아~ 이야기를 들려줘 개굴개굴

안녕하세요 오늘은 이야기리뷰를 위해 융비온정신분석연구회 대표이시자 인간과 해석의 권위자이신 박종수 교수님의 분석심리학에 기초한 이야기 심리치료라는 책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사람들은 왜 이야기를 할까? 사람들은 왜 이야기를 좋아할까? 이야기란 무엇인가?

살아있는 이야기, 생명의 이야기는 자아가 그림자의 시련을 통해 아니마나 아니무스를 만나 자기에 이르는 즉 개성화의 여정을 보여준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책 속을 들어가보실까요? 이야기심리치료 북리딩 시작합니다.

 

옛날에 이야기를 너무나도 좋아하는 총각이 살고 있었다.

그 총각은 만나는 사람마다 졸라 대서 이야기를 들은 후에,

그 이야기를 자루에 넣어 대청마루에 걸어 놓았다.

이야기자루는 자꾸만 커가고, 총각도 나이가 들어 장가를 들게 되었다.

색시를 만나러 가기 위해 총각이 분주한 사이,

한 하인이 대청마루를 지나면서 수군거리는 소리를 들었다.

조용히 듣자 하니 마루 위의 커다란 자루에서 나오는 소리인데, 그 내용이 심각했다.

자루 속에 든 이야기들은 이구동성으로

총각의 처사를 못마땅하게 생각하게 것이 아닌가?

본시 이야기라는 것은 이 사람 저 사람 사이를 넘나들며

그 생명력을 유지하는 것인데,

그 총각은 자기가 들은 이야기를 남에게 전하지 않고 자루 속에 넣어

자기만을 위한 이야기보따리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야기들은 서로 작당하여 총각을 죽일 계획을 하고 있었다.

자신들이 독버섯, 돌멩이, 독사, 양잿물 등이 되어

신랑이 신부집에 가는 도중에 신랑을 죽인다는 것이다.

다행히 하인의 기지로 총각은 목숨을 건지게 되었고

이야기들은 자유를 얻어 자기 갈 길을 갔다.

 

이야기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 있을까?

사람들은 이야기를 통해 자신을 드러내고 다른 사람을 이해한다.

이야기를 듣다보면 때론 우습기도 하고

때론 슬퍼서 마치 자신이 이야기의 주인공이 된 것처럼 착각할 때가 있다.

 

이야기를 좋아하는 총각은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자루에 담아서 대청마루에 걸어 놓았다.

이야기를 듣고 나서 다른 사람에게 전하지 않은 것이다.

그래서 그는 다른 사람의 사정은 잘 아는데

정작 자신의 문제는 잘 모른다.

 

이야기들이 가슴속에 쌓이면서 그것들이 분출되지 못하고

한이 되어 폭발하기 직전이다.

이야기는 흐르는 물과 같다.

그것들이 자연스럽게 흘러가면서

사람들의 가슴과 만날 때,

그 생명력은 이어진다.

 

이 사람 저 사람 만나면서 이야기도 변한다.

이야기는 이 사람에게는 이런 모습으로,

저 사람에게는 저런 모습으로 둔갑을 하는

요술 지팡이와도 같다.

 

누구나 이야기의 그물에 걸려들면 무엇인가를 낚아챈다.

이야기 안에서 무엇인가를 건져내지 못하고 담아두기만 하면

그는 이야기의 함정에 빠지게 된다.

그때 이야기는 괴물이 되어 우리를 삼킨다.

 

이야기를 좋아하는 총각이 나이가 들어 장가를 가야 한다.

남자가 여자를 만날 때 비로소 인간이 된다고 한다.

남녀의 만남은 육체적 결합 이상의 의미가 있다.

남자와 여자는 결혼을 통해

한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신비한 세계를 여행하게 된다.

 

그 세계는 이전에 상상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미지의 세계다.

그곳은 마녀가 살고 있는 깊은 숲 속이기도 하고

용왕님이 살고 있다는 바닷속 한가운데일 수도 있다.

총각은 이제 그 미지의 세계로 여행을 떠나려고 한다.

말을 타고 신부집으로 가던 도중에 신랑은 여러 가지 어려움을 겪는다.

 

이야기 중에 어떤 녀석은 돌이 되어 신랑을 태운 말을 넘어뜨리려고 한다.

그것을 미리 알아챈 하인이 돌을 치운다.

어떤 이야기는 뱀이 되어 신랑이 용변을 볼 때 거시기를 물려고 했다.

하인이 담뱃재를 뿌려 뱀이 신랑에게 접근하지 못하게 하여

미연에 사고를 막았다는 이야기다.

이야기를 좋아했던 신랑이 하인의 기지로 위기를 모면한 셈이다.

 

이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우리는 이야기 안에 담긴

의미나 교훈을 찾고자 한다. 그렇게 훈련을 받았다.

그렇다면 우리도 신랑처럼 똑똑한 하인을 옆에 두어야 한다는 말인가?

아니면 그 신랑처럼 이야기를 너무 좋아하지 말자는 이야기인가?

그것도 아니면 길가다가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지 않도록

앞을 잘 보고 다니란 말인가?

한술 더 떠서 시골 밭에서 용변을 볼 때

뱀을 조심하라는 것인가?

이야기를 보는 시각이 여기에 머물 때

우리는 이야기의 영혼과 만날 수 없다.

 

이야기의 영혼은 그것을 만들어낸 사람과의 공동체 정신이다.

어떤 사람의 입에서 시작한 이야기는

여러 형태로 변하면서 집단의 이야기가 되고

때로는 여러 문화에 퍼져

세계인의 이야기가 되기도 한다.

이야기는 전해질 가치가 있을 때 살아남는다.

그 가치는 이야기의 영혼과 우리의 영혼이 만날 때 드러난다.

 

이야기보따리는 인간의 마음을 그리고 있다.

마음속에 있는 심상들이 다양한 색채로 드러난 것이 바로 이야기다.

그 심상들은 평범한 언어로 표현되지 않고

상징과 은유를 통해 전달된다.

만약 일상적인 언어로 전달되면

이야기를 전한 사람의 속내가 그대로 노출된다.

 

사람들은 상징적 언어를 통해

마음속 깊은 곳에 있는 상상의 세계를 표현한다.

그것은 의식의 언어가 아니라 무의식의 언어다.

이 점에서 볼 때 이야기는 꿈이나 환상과도 같다.

다만 다른 점은 꿈과 환상은 저절로 표출되지만,

이야기는 의식적인 가공을 통해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꿈이나 환상보다는 이야기가 좀더 정교한 모습을 갖춘 것도

바로 이런 이유에서다.

 

이야기 안에 나타난 이미지들과 대상들이

주인공의 인격적 요소라고 볼 때,

이야기는 주인공과 관련된 삶의 내용들이다.

 

총각은 그것들을 좋아한 나머지 자신 안에 감추고 드러내지 않는다.

이야기들은 콤플렉스가 되어 심층에 쌓이게 된다.

그 안에는 다시 생각하기 싫은 어두운 이야기도 있을 것이다.

그것은 자신도 알지 못하는 사이에

그림자가 되어 열등감을 조장한다.

이것들은 건전한 정신 에너지와 함께 흘러가야 한다.

 

흘러가야 할 길을 찾지 못한 이야기들은

의식이 약화되거나 흥분된 틈을 타서 수면 위로 올라온다.

그래도 여전히 총각은 이야기들의 활동을 억압한다.

자신의 문제를 외부에 표출하지 않고 자신만의 세계에 가둘 때

그것들은 자신도 모르게 위협적인 흉기로 변한다.

 

너무 좋아하는 것도 그렇다.

남자가 여자를 너무 좋아해서 정신을 차리지 못한다면

그것은 사고로 이어진다.

아들과 딸이 엄마와 아빠를 너무 좋아하면, 지나치게 의존하게 되고

평생 부모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된다.

 

이야기를 좋아한 총각 역시

자신이 지나치게 좋아한 것의 함정에 빠져있다.

한번 그 함정에 빠지면 스스로 벗어나기 어렵다.

그때 구원자가 필요하다.

총각의 하인은 겉으로 볼 때 비천한 계급에 속한다.

그에게 아무런 능력도 없어 보이고 지식도 없어 보인다.

하지만 그에게 지식을 능가하는 지혜가 있다.

 

이야기들의 속삭임은 아무나 듣지 못한다.

그것은 이미 콤플렉스의 화신이 되어

무의식에 잠긴 상태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알지 못하는 무의식에 귀를 기울이는 사람만이

그 세계에서 흘러나오는 세미한 음성을 듣는다.

 

주인공은 지금 흥분된 상태다.

남성이 여성을 만날 때 얼마나 흥분되겠는가?

그것도 결혼하고 첫날밤을 치르게 되는데

그야말로 혼이 나갈 지경이다.

사고는 바로 이런 때 발생한다.

 

무의식에 잠재된 온갖 콤플렉스들은 의식의 기능이 약화될 때 활성화된다.

흥분된 의식으로 인해 정상적인 판단을 하지 못하고

정감에 휩싸이는 경우가 많다.

의식과 무의식의 불균형은 심리적 억압을 가중시키고

그 결과 예상치 못한 일들이 자신을 위협한다.

바로 그 순간 하인과 같은 현자가 필요하다.

 

심리상담가나 선생님과 같은 사람들은

우리 자신을 객관화시킬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한다.

하인은 돌과 뱀으로 변한 이야기를 분별할 능력이 있다.

 

돌과 뱀은 자연의 상징이다.

자연은 태고 상태의 모습을 지금까지 보존하면서 인간의 역사와 함께 한다.

자연을 보면 깊은 내면세계까지도 보게 된다.

자연은 파괴력과 생명력을 동시에 지닌다.

거대한 홍수는 인류를 멸절시키고 새로운 세계를 창조한다.

 

무의식의 세계는 곧잘 자연에 비유된다.

파괴적인 본능과 함께 의식에게 새 힘을 주는 원천이 무의식에 있다.

이것이 의식에 대한 무의식의 보상기능이요 자율기능이다.

 

신랑이 무의식의 파괴적 속성을 극복하려면

먼저 그림자의 정체를 알아야 한다.

돌과 뱀의 정체가 자신이 좋아했던 이야기임을 깨달을 때

비로소 내면세계의 여행은 시작된다.

 

내가 좋아했던 것들이 흉기로 변해

나를 공격하고 있다는 사실이 확인될 때

그 흉기들은 파괴력을 잃고 무섭지 않게 된다.

 

그림자와 친구가 때 주인공의 자아는 비로소 내적 영혼인 신부를 만나게 된다.

이처럼 대개의 이야기들은 자아(ego)가 그림자를 극복하고

아니마나 아미무스를 만나 자기(self)에 이르는 개성화를 보여준다.

 

이야기심리치료, 박종수(2005, 3-7)